전문가 칼럼
부품소재산업 육성, 중소기업지원만으로 가능하다?
08. 4. 30.
0
이병기
최근 대일무역적자의 증가에 따라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부품소재산업은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산업이다. 1973년부터 정부는 중화학공업을 단기간 내에 육성하기 위해 공장건설에 필요한 주요 부품소재를 수입하여 완성품을 생산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기계류·부품소재의 수입이 확대되고 특히 대일역조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1986년부터 기계류·부품소재의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산업의 자립을 위해 기계류·부품소재 국산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부품소재산업의 대일무역적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에도 불구하고 특정 부품소재의 대일무역 역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부품소재 육성정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추진된 부품소재산업 육성정책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수요 대기업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었다. 우선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다수품목을 선정하여 소액지원하는 흩어뿌리기식의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지원효과가 크지 않았다. 1994년까지 추진한 국산화사업은 저가단품위주의 개발에 치중함으로써 첨단 핵심부품과 고가의 대형 기계류 개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또한 부품소재 육성정책이 수입대체 위주의 정책이었던 점이다. 부품소재는 대체적으로 개발에 많은 투자자금이 필요하지만 개발된 제품을 판매할 시장의 규모는 작아 협소한 국내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웠다. 가격보다는 기술과 품질이 중요시되는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일단 경쟁력을 갖게 되면 수출증대는 물론 개도국의 추격이 어려운 산업분야이지만, 기계류·부품소재 국산화정책은 수입대체정책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부품소재 육성정책이 부품소재의 수요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중소기업육성차원의 지원정책이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부품소재 국산화정책은 기계류·부품소재 수요업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인 약자로서 부품 중소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춘 지원정책이었다. 부품소재산업은 공급업체가 생산한 생산품을 최종재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수요업체가 구입하여 사용하는 유발적 수요의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부품·소재 수요업체의 니즈 파악이 선행될 필요가 있으며 공급업자와 수요자간의 정보교환이 필수적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대기업-중소기업간 수급비율은 1980년대 이후 급속히 확대되어 2003년도에는 63.0% 수준까지 증가하였다. 대기업-중소기업간 혹은 중소기업간 분업내지 연결거래가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부품소재 육성정책에는 부품소재 수요 대기업과 공급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개발함으로써 연구개발 기능과 구매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보인다.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기술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부품수요기업과 공급기업간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품소재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그 수요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부품을 생산하는 공급자와 부품의 수요자인 대기업의 협력관계의 유지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수요 대기업과 공급 중소기업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수요기업, 공급기업이 참여하고 정부, 관련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공동연구개발체제의 구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부품소재 수요기업과 공급기업간 기술협력은 기술지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기술이전과 공동연구개발 실적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 부품수요 대기업은 기술지도와 기술이전을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협력기업이 자체 기술개발 능력을 확보하고 수요기업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생산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부품소재 수요 대기업과 공급 중소기업간 경쟁과 협력의 유인구조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효율성 향상을 위해 부품업체간 경쟁을 촉진하고 거래의 개방성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같은 경쟁유인과는 별도로 대-중소기업간 협력이 긴밀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유인제도 구축이 필요하다. 일본 자동차산업에서는 부품생산업체의 비용인하와 기술개발성과를 배분하는 룰과 함께 부품업체와 대기업이 위험을 분담함으로써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경쟁유인을 통해 기회주의적인 행동가능성을 감소시키고 또 공동기술개발의 성과배분·위험분담 등 대·중소기업간 협력의 유인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부품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부품수요 기업의 공급기업에 대한 자본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모기업의 수탁중소기업에 대한 자본참여 실적이 미진한 이유는 중소기업의 경영권 침해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함께 법제도적으로 대기업의 관련업종에 대한 자본참여를 제한한데 따른 것이다. 수요 대기업은 시스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우선 부분적인 자본참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소기업도 자본참여 문제를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공급기업에 대한 자본참여는 공동연구개발, 전속성이 강한 생산설비 도입 및 모기업의 비용과 위험분담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긍정적인 협조의 좋은 사례의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부품소재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술협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핵심기술 유출방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설계도면 등 각종 문서들이 디지털화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한 번에 대량의 정보가 유출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기술협력 과정에서 핵심기술보유 업체의 부품이나 장비, 기술거래를 통해 거래업체로 이전되고 이러한 기술이 경쟁사로 넘어가는 사례, 협력업체가 부품·장비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기술 및 노하우가 경쟁업체로 누출되기도 한다. 기술유출에 대해서는 피해보상체제가 미흡하며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법제도 및 시스템 정비가 필요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