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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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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한은보고서와 외환시장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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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석

2005년 2월 22일 하루 원 달러 환율은 17원이 떨어진 달러 당 1,006원으로 급락했다. 물론 그 전에도 10원 이상의 낙폭으로 환율이 하락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간 환율하락 추세의 지지선으로 인식되어왔던 세 자리 수 환율에 근접한 만큼 이 날의 환율하락의 파장은 매우 컸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일일 환율변동은 대부분 경제 펀더멘탈 자체의 변화보다는 외환시장과 관련된 각종 사건이나 뉴스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거시나 무역변수와 같은 경제 펀더멘탈이 중장기에 있어서 대세의 움직임을 결정한다면 이처럼 단기의 변동은 각종 기대하지 못한 뉴스나 정보에 의해 발생한다. 이번 상황 역시 한국은행이 국회 재경위원회에 제출하는 정기 보고서에서 언급된 외환보유액의 보유통화 다각화라는 문구가 외환시장에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가져왔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러한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대해 국내보다 세계 외환시장이 먼저 반응했다는 것이다. 아마 이 점이 한국은행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한국은행 측에서는 외환보유고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한국은행이 이처럼 세계 외환시장에서 주목받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와 외환당국의 지속적 개입의 결과 2005년 1월 현재 1,988억 달러에 이를 만큼 외환보유고가 급속하게 증가했다. 센트럴 뱅킹 퍼블리케이션스(Central Banking Publications)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말에서 2004년 5월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962억 달러에서 1천665억4천만 달러로 73.1% 늘어났으며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증가율인 65.2% 보다 높다*. 이처럼 세계 외환시장에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현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달러 매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시장에 큰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외환보유고 증가는 수출의 호조도 있지만 지속적인 개입의 결과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한은 보고서가 한국은행 주장대로 외환시장에서 확대 해석된 이유도 한국은행의 그간 외환시장 개입 노선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달러가치의 하락이 큰 흐름인 지금 달러 가치와 관련된 작은 발언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인식했어야 한다. 이는 마치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전거를 조금만 밀어도 가속도가 붙는 현상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사실 그간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달러 가치 하락이 전반적인 대세임은 이미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가장 관심을 갖는 사항은 환율 변동 속도이다. 언제쯤 환율이 세 자리수가 될지 등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으며 세 자리 수 환율 진입이 경제주체들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이번 한은 보고서 건은 환율을 예상보다 일찍 세 자리 수 목전에 갖다놓고 말았다. 환율 세 자리 수 시대를 준비하는 기간이 그만큼 짧아질지 모를 일이다.


셋째, 일단 보고서 파장이 생긴 후 즉시 사태를 수습하는 면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21일 로이터 통신에 의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자산 다각화 뉴스가 흘러나간 지 거의 이틀이 지나서야 외화표시자산 투자대상 통화 다각화가 보유 달러화 매각과 무관함을 발표했다.


아마 한국은행은 이번 환율급락 사태에 대해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외환보유 통화의 다각화는 중장기적인 환율관리 대책으로 제시되어 왔으며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도 고려하고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던 속담처럼 똑같은 발언도 시장 환경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시장은 살아있다. 더군다나 외환시장은 24시간 운용되는 글로벌 마켓이며 정보통신의 발달로 외신 한 줄의 뉴스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몇 초도 안 걸리고 이러한 뉴스들에 외환시장 딜러나 해외자본 투자가들은 즉각 대응한다. 외환보유고 기준으로 세계 4위가 된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이번 보고서는 일상적인 보고서로만 인식되어 늘 반복해서 얘기하던 대안을 한 줄 더 추가한 것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외환시장 움직임의 주기가 빨라짐을 아직까지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책당국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주요 경제관련 뉴스나 각종 지표 발표가 분당 환율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미 본격화되었으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초단기(初短期)에 있어서의 환율 움직임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조차도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한국은행은 현재와 같이 외환보유고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는 세계의 외환시장이 주도면밀하게 자신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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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경제 2005년 2월 14일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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