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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일본의 금리·환율·부동산 버블 삼중주, 한국서 재연?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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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컫는 일본의 심각한 장기 불황과 물가하락 현상(deflation)은 20세기 이후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불황이 시작되기 이전의 상황은 그렇게 독특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 예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당시 일본과 유사한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이를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아, 당시 일본과 요즈음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980년대 일본 경제의 주요 특징은 환율, 금리의 변동성이 컸다는 것과 부동산, 주가 등 자산가격 버블이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큰 화두가 되고 있고, 금리는 오르는 부동산을 잡기위해 더 인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당시 일본과 유사한 면이 있다. 무역흑자에 의해 통화량이 증가한 것도 비슷하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지속적인 무역흑자로 달러유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통화량이 큰 폭으로 늘었다. 이런 유동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자금수요가 없어 금융권 자금이 주로 가계와 중소기업으로 공급되었는데 이것도 우리나라 요즈음 상황과 비슷하다 하겠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경우 대기업의 회사채 시장과 같은 직접금융 의존도가 높아졌던 것에 비해 우리 기업들은 여유자금이 풍부한 가운데 신규투자에 대한 보수적인 행태를 보여 금융권의 자금에 대한 수요가 낮다는 점이 다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자산가격 버블은 우리의 경우보다 더 광범위하고 오래 진행되면서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예를 들어 일본은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과 더불어 주가도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1980년 초와 ’80년대 중반 사이에 지가는 연평균 6~7%, 주가는 7,100대에서 13,000대로 올랐다. ’81년 이후 금리는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고 엔-달러 환율은 200~250 수준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한국의 자산가격 상승은 주가에는 별 영향이 없이 부동산에 집중되었다는 특징이 있고, 아울러 아직까지 부동산 가격 상승폭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다.


그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1985년 9월 G5 경제관료들이 뉴욕에 모여 엔화를 절상시키기로 의견을 모은 플라자 합의(Plaza Accord)가 발표된 이후 엔-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합의 전 달러당 250엔을 상회하던 환율이 약 2년 후에는 120엔대로 하락한다. 2년 사이에 2배의 절상 폭을 보이자 이에 따른 실물경제에 미칠 충격이 우려되어 일본은행은 금리를 가파르게 낮춘다. 2년 사이에 콜금리는 3% 포인트나 하락하여 3%대 수준에 이르게 된다. 동시에 환율하락세를 완화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되면서 통화량이 그 이전보다 더 빠르게 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부동산과 주가 상승에 강력한 연료를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1986년부터 ’90년 사이에 연 평균 25%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고, 주가역시 Nikkei 225 지수가 ’85년 말 13,000대에서 ’89년에는 38,900대로 약 3배나 상승한다. 뒤늦게 자산가격 버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일본은행이 ’88년 상반기까지 3%대였던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는데 버블 붕괴가 시작된 ’91년에는 8%대에 이르게 된다. 금리가 크게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약 3년에 걸쳐 자산가격도 꾸준히 상승하였다. 이런 상황은 금리인상이 자산가격 버블을 제어하는데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경우도 그 동안 무역수지 흑자로 통화량이 늘었다. 원화 역시 빠른 절상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이후로 내수는 지속적인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수출이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내수가 안정될 때까지는 수출호조세 유지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원화 환율 안정노력은 불가피하다. 이런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 안정을 위한 시장개입은 통화량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소비나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이렇게 통화량이 늘게 되면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를 찾아 돈이 쏠리는 현상을 조장하기에 알맞은 환경이 조성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림> 한국 주택매매가격 종합지수 추이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산가격 앙등현상은 특징이 있다. 부동산 가격 증가세가 지역적인 집중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2000년 이후 가격 상승추세는 강남지역이 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광범위한 자산가격 버블현상으로 보기에 석연치 않은 측면이 있다. 물론 2006년 하반기 들어 서울 및 수도권 전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아직까지 그 범위가 제한적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는 2004년부터 일찌감치 서울 강남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강한 수요억제 정책을 펼쳤다. 돌이켜 보면 부동산 가격앙등이 별 문제가 아니었던 시기에 극성을 떨면서 문제를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겠다.

그 동안 정부정책의 치명적인 결함은 공급 확대를 등한시한 것과 행정도시, 송도지역 등 전국적인 개발사업 추진으로 30~40조에 달하는 토지 보상비가 풀려 수도권 지역 부동산 가격 앙등의 직접적인 불쏘시개로 작용한 것을 들 수 있다. 저금리가 과잉 유동성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높았으나 이는 너무 단선적인 시각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금리가 인상되면 부동산 가격앙등이 멈출 것이라 하는데 앞서 살핀 일본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환율 안정을 위한 달러매입이 통화확대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국내외 금리차를 이용한 재정거래(arbitrage)의 유인을 키워 추가적인 달러 유입을 부축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후반처럼 금리가 계속 오르더라도 통화량이 빠르게 늘었던 결과가 한국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문제이지만 지금과 같은 우리경제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것도 상당히 큰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정책은 부드러우면서도 효과가 있어야 한다. 최근 공급확대를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울러 경제전체를 교란할 수 있는 금리 대폭인상보다는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자금량이 늘지 않도록 하고, 아울러 이미 유입된 자금의 유통속도를 낮추는 조치들이 더 바람직하다. 최근 단행된 통화당국과 감독당국의 지준율 인상과 주택관련 대출의 대손충당비율 인상은 이런 맥락에서 적절한 정책이다. 토지보상비제도는 손질이 필요하다.

경제의 각 부분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앞서 보았듯이 환율, 금리(통화량), 부동산 가격 등은 삼중주곡처럼 끈끈이 엮여 있어 한 곳에서 문제가 터진 경우도 복잡한 생성과정을 거친 결과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우리가 요즘 연주하는 삼중주곡은 1980년대 일본의 그것과도 다른 면이 있다. 특히 우리경제 작금의 상황은 충격요법을 시도하기에 지나치게 취약하다. 조심스러워야 하며 동시에 여러 정책기관들이 관장하는 수단이 전체적으로 잘 조율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효과도 없을 뿐더러 지난 3년 동안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처럼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내년 외환위기 10주년을 앞두고 최근 태국에서 외환시장 불안 조짐이 가시화 되었다는 소식에 국민들이 불안해한다. 경제 부총리를 위시한 정책 담당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내년에는 나라경제에 몰입하는 우직스럽고 의연한 공복(公僕)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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