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슈 논평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규제와 감독의 방향
09.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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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환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실물경제는 1929년 세계 대공황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직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IMF 구제금융까지 신청했던 아이슬란드 정부는 버티지 못하고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금융위기는 매우 무서운 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세계 곳곳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필자는 그 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한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포함하여 우리가 경험한 금융위기 사례들을 통하여 그 발생 원인을 짚어보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안을 규제와 감독의 수단을 중심으로 모색해 보고자 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시장과 감독 모두가 실패한 사례이다. 옛날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개인의 이기적 행동과 탐욕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바람직한 성과를 낳는다”라고 주장하였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엄청난 사회적 손실과 고통을 낳고 있으니, 애덤 스미스의 잣대에 의하면 이번의 금융위기는 명확하게 시장이 실패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에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나 베어 스턴스(Bear Sterns)와 같은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을 감독하는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The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었던 개연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감독이 실패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도 과거 IMF 환란이나 신용카드 대란 등 유사한 금융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IMF 환란은 당시 단자회사들이 무모한 경쟁적 단기 외화차입과 신흥시장 대출, 그리고 신용카드 대란은 카드회사들의 경쟁적 신용카드 발급(소위 ‘길거리 카드 발급’)과 ‘카드론’이 발단이었다. 모두 시장과 감독이 실패한 사례이다.
그렇다면, 왜 금융시장이 실패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맨큐(G. Mankiw)가 저술한『Principles of Economics』교과서 제1장은 경제학의 10대 원리를 선정, 소개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시장은 통상(usually) 경제활동을 조장하는 우수한 방법이다”이며, 다른 하나는 “그러나 시장은 때때로(sometimes) 실패할 수도 있다”이다. 맨큐는 시장이 실패하는 예외적인 경우로 독점시장과 외부(비)경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필자는 금융시장이 실패하는 것은 외부비경제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기업의 생산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CO2와 같은 공해의 배출은 사회적 비용이지만 사적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이 실패하듯이, 금융기관의 쏠림행위(herd behavior)로 야기되는 시장의 거품과 ‘금융시스템’ 리스크는 사회적 비용이지만 사적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실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 ‘금융시장의 실패’를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사회적 비용을 사적비용으로 내부화(internalization)하는 것이다. 기업으로 하여금 CO2 배출권을 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하듯이, 시장의 거품을 초래할 수 있는 금융행위에 대하여 해당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그 비용을 부담케 하는 것이다. 금융시스템 리스크 조장행위에 대한 비용의 내부화는 CO2 배출량처럼 객관적 측정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개별금융기관마다 갖고 있는 체계적(systematic) 위험은 시장에서 여러 가지 지표 혹은 계수로 측정되며 차별화된다.
많은 연구논문들은 개별 경제주체가 발행하는 채권들의 스프레드는 예상되는 부도 손실뿐만 아니라 체계적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까지 반영한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또한 개별경제 주체가 발행한 주식의 베타계수도 재무이론에서 전통적인 체계적 위험 측정치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개별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체계적 위험은 어느 정도 금융시스템 리스크 조장행위와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격은 IMF 환란이나 지금의 금융위기처럼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극심한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그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할 수 있는가?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대손충당금 설정을 체계적 위험과 연계시키는 방법이다. 대손충당금을 직전 과거 대손율에 의해 설정한다면 후행적(backward-looking)인 방법이다. 그러나 스프레드나 베타계수는 선행적(forward-looking) 지표이므로 향후 금융위기 발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예금보험 프리미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즉 금융기관들의 베타계수가 전체적으로 상승한다든지 혹은 일부 금융기관의 체계적 위험이 크게 상승하는 경우 탄력적으로 혹은 차등적용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우리나라 예금보험공사가 예금보험료 차등적용제를 실시할 것으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체계적 위험과 보험료 산정을 어느 정도 연계시킨다면 금융위기 재발 방지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 감독은 왜 실패하였으며, 어떻게 하면 개선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길 때 사업을 잘하고 신용이 있는 기업에 몰아 줄 것을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금융기관의 중개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이다. 그러나 금융기관 경영진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져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부실화된 메릴린치(Merrill Lynch) 투자은행은 BOA은행에 합병되기 바로 직전에 경영진이 수십억 달러의 돈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은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의 표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처럼 금융기관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하여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지 않도록 상시 모니터링하고 감독하는 권한을 금융감독기관에 위임한 것이다.
그러면 금융감독기관이 사람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할 수 있을까? 물론 금융감독기구의 감독능력 부족이나 태만 등으로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감독기구의 독립성 결여 때문에 감독이 실패하는 경우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감독 실패로 지탄받고 있는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워싱턴으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달성하는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하여 독립성을 외치듯이, ‘금융기관의 부실 방지’와 ‘시장안정 확보’라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감독기구의 독립성이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박기환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keepark@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