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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장기판의 말[馬]로 아는 사람들


법이나 규제의 제정, 정치인의 발언과 같은 국가의 행동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한 통찰은 맹자의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맹자는 2300여 년 전에 “왕께서 만일 백성들에게 인정(仁政)을 베푸시어 백성들의 형벌을 줄이고 세금 거둠을 적게 하면 백성들은 밭을 깊게 갈고 김매기를 잘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인정(仁政)을 형벌을 줄이는 것과 세금을 적게 거두는 것과 동일시하면서,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자신의 생업에 열심히 종사할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맹자가 살았던 전제 군주의 시대와 근대 국가의 탄생 이후에 시작된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국가의 올바른 역할에 대한 그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인은 정책 설계자이고, 정치인이 정책을 설계하면 그에 따라 시민들의 행동 방식은 변한다. 올바른 정책은 시민들의 올바른 행동을 유도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인들이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설계해도 반드시 그 설계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한 목적을 가진 정책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담 스미스는 시민들의 행동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설정한 선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마구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에게 ‘체제 신봉자(man of system)’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체제 신봉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매우 총명한 자로 생각하기 쉽고, 그래서 흔히 이상적인 자기 계획의 아름다움에 너무나 현혹되어 그 계획 속의 어떤 부분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는 자기의 계획에 반대될 수도 있는 강력한 편견들이나 커다란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그리고 전면적으로 추진해 나간다. 그는 이 거대한 사회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구성원들을 마치 장기판 위에서 손으로 말들을 배열하는 것만큼이나 아주 쉽게 배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장기판 위의 말들은 사람의 손이 힘을 가하는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지만,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장기판에서는 모든 말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의 운동 원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입법기관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다행스럽게 입법기관이 부과하는 운동 원리가 구성원들의 행동 방식과 일치하고 동일한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인간 사회는 편안하고, 조화롭게 진행되어, 행복하고 성공적이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 사회는 불행하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현실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인 경우가 많다. 체제 신봉자는 사람들을 장기판의 말 취급을 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말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자 세원 추적이 어려운 현금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지하경제를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신용카드 사용액은 올 들어 감소하고 거액의 병원비와 학원비도 현금으로 지불하고 5만원권 소유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소득이 역추적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정확한 원인 파악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작용만 초래


정부와 정치권의 지하경제 양성화의 의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치밀하지 못한 지하경제 양성화 선언이 ‘현금 경제’를 불러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세무 조사’라는 공포심을 심어준다. 이런 현상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역설’이다. 하물며 목적 자체가 논란의 대상인 경제 민주화 정책이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이 실제로 가져올 효과는 그 정책이 의도한 목적과 크게 어긋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툰 규제는 없는 것만 못하다.


좋은 뜻에서 나온 정부 정책들도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정책이 바로 잡으려는 현상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정확한 원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작용만 초래된다. 최근 들어 국회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걱정스러운 이유도 그것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경제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면밀한 원인 진단이나 사려 깊은 논의 없이 현상에 대한 피상적인 진단을 토대로 경쟁적으로 입법에 들어간다. 이런 입법들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을 치료하기보다는 그 현상을 심화시키기 십상이다. 이런 입법은 뿌리가 얕은 질병에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항생제의 투여가 아니라, 경제 생태계가 자생력을 회복하여 강한 면역 체계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 생태계의 건강은 생태계 밖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와야 한다. 외부적 관점에 따른 정책이 많아지면, 시장 경제는 근본적인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소나기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은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체제 신봉자’를 닮았다. 그들은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장기판에서, 각각의 말[馬]들이 법률 입안자가 기대한 방식과 전혀 다른 운동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체제 신봉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이 땅에 천국을 만들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만드는 것은 지옥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체제 신봉자’들은 ‘소나기 입법’을 제정할 게 아니라, 문제 발생에 관련된 사람들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과도한 정의감’을 억제해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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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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