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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사회적 비용


헛소문에 시달린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는 안개 속에 홀로 놓여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뭔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마음을 짓누른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음이 느껴지지만 무엇에서부터 시작하고 무엇을 상대로 싸워야 한단 말인가. 헛소문은 독가스처럼 조용히 한 인간의 마음을 피폐시켜 무너뜨리고 그런 소문들의 양산을 통해 사회는 병들고 암울해진다.


헛소문의 사회


헛소문 또는 루머(Rumour)란 이 사람 저 사람 입을 오르내리며 근거 없이 떠도는 말이다. 진실로서 입증되지 못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비를 다투게 되고 남에게서 헐뜯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문의 당사자를 옹호하는 입장이라 해도 그 헛소문을 언급하는 일 자체가 당사자를 또 한 번 가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사례를 든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헛소문은 거대한 토네이도처럼, 당사자를 옹호하는 것과 음해하는 것 모두를 한 덩어리로 빨아들여 거대한 소용돌이로 파괴력을 늘려가기 때문이다.


며칠 전 TV 드라마 ‘상도’를 다시 보자니, 홍삼 거래를 마치고 중국 기방에 들린 주인공이 거기에서 만난 기녀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여 거액의 돈을 주는데 이 일이 중국에 첩을 두고 비단 가게까지 마련하였더라고 와전되었다. 하지만 결국 진실이 밝혀져 그는 이문을 남기는 장사를 넘어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였다는 찬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헛소문의 결말이 드라마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방금 발생한 일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공유되는 거대한 거미줄 망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 헛소문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겐 없다. 오히려 루머는 눈덩이처럼 커져 간다. 진실은 감춰지고 보다 자극적인 루머로 확대된다. 차라리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소문이 돌거나, 관심 대상이 아니어서 소문의 피해가 없었다면 다행스러울 일이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은 소낙비처럼 내리꽂히고, 결국 진실을 알리고 싶지만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 개인은 극단적인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루머가 확대ㆍ재생산되면서 사회에 필요한 인재들이 희생되는 과정을 보면, 세상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우리는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해왔지만 ‘더 정확한’ ‘더 책임 있는’ 자세에 대한 요구는 소홀히 해왔다.


비합리적인 인간의 집단행동


지구는 둥글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보편적 진리로서 받아들여진다. 여기엔 다른 꼬리가 붙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류가 달에 착륙했던 사진이 조작된 거짓 사실이라는 인터넷 주장에서부터 몇몇 중요 정치적 사건들에 있어서까지 우리는 완전히 상반된 시각이 함께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란 경제활동에서 인간이 보이는 비합리적인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 케인즈가 사용한 표현인데 이 야성적 충동과 ‘군집행동(herd behavior)’이 루머의 확산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믿고 그대로 받아 남들에게 전하는 행위나 놀라운 추진력으로 일방적 주장을 계속 생산해내는 행위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오히려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대방의 말에 나 모르는 속내가 있는지 상대의 본심을 의심하지 않는가. 그러나 오픈 공간에서 제공된 이야기에 동조하며 유행(fashion)과 조류(trend)에 따라 한 방향으로 쏠리는 가운데 같은 부류임을 확인하는 집단행위가 나타난다. 일단 누군가가 같은 집단임을 확인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루머에 대한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와 같이 비합리적인 인간의 집단행동으로 루머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파급효과가 더욱 커진다. 이미 대중화된 블로그, 트위터 등 SNS의 활약으로 새로운 소식을 옮기는데 드는 노력과 투입되는 시간, 즉 비용이 거의 들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이런 루머를 양산하는데 일조하였다.


루머의 사회적 비용은 모두의 것, 사실의 언어가 필요한 시대


기업이 소문으로 ‘구설수’에 오르면 그들의 피해는 엄청나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국민적 정서에 어긋나는 자본으로 운영한다.’ ‘허위 광고를 하고 있다.’는 식의 일반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의 소문은 한 기업의 존폐를 결정할 수도 있다. 이들이 입은 피해 금액을 산출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그 피해액을 보상하지는 않는다. 소문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시장은 증권시장일 것이다.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기다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루머가 생성되기 시작하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이 되기까지 증권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된다.


소문을 믿는 대중들에게도 피해가 돌아온다. 소문 때문에 유망한 정치인을 잃은 경우, 훌륭한 연예인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경우, 우리는 보다 맘에 드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대중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 고통을 모르는 것 같다.


과거 정보가 통제되던 시절에 ‘그렇다더라’는 소문은 시간이 흐른 뒤 실제 사실로 확인되곤 했다. 우린 과거의 사회적 경험을 통해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누군가는 우리가 일제시대를 거쳐 생존을 위해 중앙세력과 싸워온 저항의 역사를 지닌 민족이었고 그러한 저항의식이 남아있어 소수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생각들이야 개인의 근거 없는 상상의 소치라 치고 한 가지만 꼽자면, 우리사회에선 객관적 시각으로 사실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에겐 사실의 언어와 의견의 언어를 구별하는 재교육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소설가는 책만 쓰는 것이 아니고 개그맨도 사회에 웃음만 전해주는 세상이 아니다. 이젠 가장 객관적 언어를 사용해야할 뉴스 보도 말고도 모든 이들이 뉴스를 만들어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책임감 있는 사실의 언어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원형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본부 연구위원, lee@h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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