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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에서의 법인화 독법


내가 근무하고 있는 경북대학교는 국립대학교이다. 현재 경북대학교에서는 법인화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받은 스팸메일의 절반은 대학본부에서, 나머지 절반은 교수의회에서 보낸 것이다. 대학본부는 법인화를 추진하려고 하나 교수의회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라로 치면 청와대와 국회가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투표 결과 재학생들 중 다수는 법인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로 대표되는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이다. 대학 내 제(諸) 집단이 각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학내 정치의 결정판이다. 모두가 대학 발전과 공익을 말하지만 본질은 사익의 추구이다. 대학교가 ‘조직화된 무정부(organized anarchy)’라는 사실을 체감(體感)하고 있다.


정부는 한쪽에서 돈을 거둬서 다른 쪽에 지급할 수 있을 뿐


현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들의 이해관계는 단순하다. 등록금은 적게 내고 장학금은 많이 받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또한 자신이 졸업한 후에도 모교의 평판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들은 대학이 미래의 투자를 위해 떼어놓은 적립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학교의 평판이 유지되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이 낸 등록금이 적립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들의 입장에서 대학의 적립금은 쓸모없는 돈이다. 졸업한 후 지어지는 건물과 임용된 교수는 자신과는 무관하다. 이러한 점에서 재학생과 잠재적인 입학생의 이익은 상충(相衝)한다. 대학의 적립금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작년 국정감사 결과, 경북대학교의 적립금은 100억 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한 지역신문의 기사 제목은 ‘경북대학교 등록금 장사, 적립금 100억 원’이었다. 100억 원을 경북대학교 재학생 2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50만 원에 불과하다.


교수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정년 보장을 받은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 인기학과 교수와 비인기학과 교수, 보직교수와 평교수, 대학본부 쪽 교수와 교수의회 쪽 교수 등으로 나뉘면서 법인화에 따른 이해득실(利害得失)도 달라진다. 단순히 찬성과 반대만 갈리는 것이 아니라 찬성과 반대의 강도도 극명하게 대조된다. 소속 교수의 95% 이상이 반대하는 단과대학이 있는가 하면 다수가 찬성하는 단과대학도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거의 모든 교수들이 공무원 신분의 유지, 임금 인상, 수업과 연구 부담의 경감(輕減) 등을 바란다. 안정적인 신분으로 일을 적게 하면서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내 이익집단에서 직원들을 뺄 수 없다. 수는 적지만 조직력과 결속력은 가장 강하다. 직원들 역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크게 공무원과 기성회계 직원으로 나뉘는 데 기성회계 직원은 다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된다. 공무원인 직원들은 국립대학교가 법인화되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면 된다. 정규직 기성회계 직원들도 고용이 승계되기 때문에 신분이 보장된다. 문제는 비정규직 직원들이다. 여기에는 시간강사, 강의전담 교수, 초빙교수, 계약교수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법인화에 관계없이 계약이 만료하면 실직한다.


대학 내 이익집단들이 원하는 것은 ‘싼 등록금-신분 보장-낮은 노동 강도-높은 급여’이다. 이를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국립대학교를 유지하면서 정부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세금이 계속 투입되어야 한다. 정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경제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쪽에서 돈을 거두어서 다른 쪽에 지급할 수 있을 뿐이다.


법인화가 필요하다면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면 될 일


이번 주에 교수의회 주관으로 법인화에 대한 찬반 투표가 실시된다. 나와 같은 회색분자에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나에게 너는 누구 편인지 묻지 말라”고 했던 소설가 김훈 선생이 부러울 뿐이다. 국립대학교의 법인화 문제를 이해관계자들인 학생과 교수들의 투표로 결정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실소(失笑)를 금(禁)할 수 없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문제를 대학교에 떠넘기는 정부에 절망감을 느낀다. 내가 속한 경북대학교는 국립대학교이고, 국립대학교의 교수는 교과부장관이 임명한다. 법인화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할 일이라면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모 일간지 기자는 우리나라를 난민촌(難民村)으로 정의(定義)한 바 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가는 난민촌이 되고, 국민들은 난민으로 전락한다. 서울대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과 시청 광장에 앉아 있는 시민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오정일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jo31@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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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의 제목은 김원우 선생의 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 독법”을 패러디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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