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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가격 그리고 시장경제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이고,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지출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지수도 작년 3/4분기에 15%로 고유가로 물가가 급등하였던 2008년 3/4분기 이래 최대 수준을 기록하였다. 아마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상승률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필자도 주위 분들로부터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푸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현 정부는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 서민물가안정 대책을 수차례 발표하고 해당 정부부처에게 소관 품목의 가격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지도를 독려하고 있다. 이른바 서민물가와 관련된 정부부처들은 연초에 서민물가안정대책을 보고하고, 이러한 대책의 집행을 총리실이 주관하여 민간전문가를 통해 평가하고 있다. 부처나 장관에 대한 평가 사항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는 점 때문에, 관련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담당하는 품목의 가격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으리라 어렸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 가격인상을 예고했던 몇몇 기업들은 인상 시기를 미루기도 했고, 또 정부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공공서비스 부문은 유가상승이라는 비용 측 요인에도 불구하고 가격인상을 계속 미루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정부와 관료들의 혼신의 노력으로도 물가상승을 막지는 못 하고 있는 형국이고 물가상승 압력은 더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가 물가상승이 정부의 가격 관리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유가 상승이라는 총공급 측면의 요인이 물가상승을 야기하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고환율·저금리 정책이 이러한 총공급 측면의 요인에 상승작용을 일으켜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비유를 하나 들자면, 정부가 둑을 터트려 놓고는 둑 아래 마을 가계들이 침수 되지 않게 물을 빨리 퍼내라고 독려하고 있는 꼴이다. 고환율·저금리 정책으로 물가상승이라는 둑을 터트린 정부가 개별 정부부처에게 서민물가 안정 대책을 세우고 담당한 개별 품목의 가격 인상을 저지하라는 것은 둑은 터트리나 가계들이 침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담당 공무원들에게 어떻게 하든 침수를 막아보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거시적 고환율·저금리 정책과 미시적 개별 가격 인상 억제 정책이라는 정책 믹스(mix)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어느 정도 작동되었던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0년대 한국 경제는 더 이상 개발도상기의 경제가 아니고 또 더 이상 개발도상기의 정책이 오늘날 유효할 수 없음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적어도 필자에게) 충격적인 것은 자칭 ‘친시장적’이라는 현 정부나 현 정부의 고위 경제관료들이 시장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중요한 거시 경제 정책은 물가 정책이 아닌 이자율과 환율정책이어야


구매자는 항상 싸게 물건을 사고 싶어 하고, 판매자는 항상 비싸게 팔고 싶어 한다.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공정한 가격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천양지차일 것이다.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자신들이 최대한 지불할 수 있는 가격과 최소한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물어봐도 정직하게 대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나 제 3자가 구매자와 판매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과 꼭 받아야 하겠다는 가격을 알아낼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진정한 구매 희망 가격과 진정한 판매 희망 가격을 당사자 간의 교환과 구매자 간 경쟁 그리고 판매자 간 경쟁을 통해 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경쟁가격을 공정가격이라고 하고, 경쟁가격을 통해 가장 필요로 하는 구매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판매자가 물품을 판매하게 되므로 경제 전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장은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국가나 또는 친시장적 정책을 표방하는 정부라면 경제 주체 간의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것이 정부나 관료가 아닌 시장이며, 가격의 신호 기능이 시장의 근간임을 명심하고 가격의 신호기능을 강화 또는 보완하는 것을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른바 완전경쟁적인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정 기업이나 집단이 시장가격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불완전 경쟁이 보다 일반적이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진입과 퇴출에 대한 인위적인 장벽이 없다면 유효 경쟁가격이 형성된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더 중요한 점은 인위적 진입·퇴출 장벽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정부나 제 3자가 개입해 공정가격이나 적정가격을 결정하려는 시도는 더 큰 왜곡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정책은 독점화 시도나 인위적 진입·퇴출 장벽을 조성하는 전략적 행위를 금지하고 진입과 퇴출을 용이하게 하는 공정거래정책(즉, 경쟁정책)이며, 이러한 정책은 가격의 신호 기능을 강화시키는 친시장적 정책이기도 하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물품의 가격을 정부나 정치인이 나서서 낮추거나 높이는 것이 마치 국민을 위해 일하는 유능한 정부나 정치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반시장적이고 포퓰리스트적인 인식이다. 친시장적인 정부나 정치인은 불공정거래 행위나 경쟁제한적 구조를 보정하는 정책을 추구하며 포퓰리즘적 시장 개입의 유혹을 뿌리치는 이들이다.


개별 품목의 가격을 정부가 결정하거나 가격 결정에 직접 개입하려는 정책이 가장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말이 정부가 물가상승에 수수방관하는 정책을 취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가란 개별 품목의 가격이 아닌 경제전반의 일반적 가격 수준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개별 품목의 가격은 물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거시 경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이자율 및 환율정책이며, 기준 이자율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는 것은 시장 친화적인 거시 경제 정책인 것이다. 사실 상 ‘반시장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정부나 관료들이 ‘친시장’이나 ‘시장중심’이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한다면, 이는 정책 불신을 넘어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낳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정부 연구센터 소장, san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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