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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책과 이념


지난 몇 년 동안 복지가 화두가 되어 왔다. 개발도상국 시절에 이미 건강보험을 도입했고 10여년 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어 150만 명이 넘는 최저소득층의 생계를 국가가 돕고 있다. 그런데도 보편적 복지라는 정책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엄청난 유혹이다. 국가가 애들 밥을 공짜로 주고 애 낳으면 국가가 다 키워주고 몸이 아프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국가가 똑같은 품질의 의료를 베푼다는 건 얼마나 '평등한'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정의로운' 일인가? 그러나 그런 유혹에 넘어간 사람도 막상 그 비용을 자신의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걸 알면 고개를 흔든다. 결국은 자기가 낸 돈으로 국가가 밥을 주고 애를 키워주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아니면 빚은 내야 할 판이니 그건 또 지금 공짜밥을 먹는 아이들이 장래 갚아야 할 몫이다. 말하자면 보편적 복지란 돈을 추렴해서 하는 배급제에 불과한 것이다.


복지의 확대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 복지의 축소는 평등을 훼손하는 일


자본주의가 성숙해지고 자유가 확대되는 동안 빈부격차가 생기는 현상은 필연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는데 왜 누구는 부자로 살아야 하고 누구는 빈곤하게 살아야 하는가?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것엔 본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우연(예컨대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과 행운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자가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으로서 빈곤의 늪에 빠진 경우도 본인의 나태와 방종, 무능력 외에도 우연과 불운이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빈곤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당사자에게만 지우고 사회가 이를 외면한다는 것도 정의에 맞지 않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를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것은 재능과 노력으로 부자가 된 이들에게 그 성과를 빼앗는 게 된다. 쉽게 말해 '남이 만든 걸 나눠 먹자'는 발상인 것이다. 여기에서 어디까지 사회가 빈곤층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가 문제 된다. 즉 복지의 확대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되고 복지의 축소는 평등을 훼손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야말로 오늘날 여러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오늘날의 자유주의는 최소한의 정부가 자유와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었던 고전적 자유주의와 오래 전 결별했다. 미국의 리버럴(contemporary liberalism)로 대표되는 이 이념은 자본주의가 물질적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어 경제성장과 기업 활동을 지지하면서도 강력한 국가가 시민의 안전과 경제발전, 나아가 시민들에게 평등한 경제적 기회를 준다고 주장한다. 대개 미국의 리버럴은 시장의 자유와 함께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 이에 비해 영국의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진보주의‘도 큰 정부를 지향한다. 진보주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 공감하지만 대중이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 진보주의에서 가장 개혁적인 사회민주주의 역시 다원주의 틀 안에서 기능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여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해 정상적인 정치권력으로 생산수단의 공적 통제를 강화하고 사회적 재화를 더욱 평등하게 분배하려는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영국의 노동당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집권하면서 다양한 보편적 복지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복지의 확대가 성장을 둔화시키고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은 뒤로 노동당의 정책은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복지로 바뀌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가 성공한 나라는 스웨덴이 꼽힌다. 대개 복지의 확대가 성공한 나라는 인구가 적고 국토가 넒은 나라다. 즉 SOC건설에 많은 비용이 드는 대신 직접적 복지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나라들이다. 발트해 연안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데다 루터교 신자가 압도적이어서 비교적 사회통합이 잘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구가 많은 나라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하나 같이 실패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건 영국은 일찍이 복지병을 앓다가 마가렛 대처 여사가 정부부문을 축소하는 대개혁을 한 뒤로 회복했다. 지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까지 재정위기를 겪는 것은 무분별한 복지의 확대가 국부의 확대로 뒷받침 되지 않은 탓이다.


한편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은 오히려 오늘날 보수주의로 이어져 큰 정부가 개인의 창의성을 막는다는 생각 아래 시장의 자유와 경제 영역에서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보수주의는 국가 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확대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거 보수주의자들은 평등주의에 따른 복지를 거부했지만 오늘날 심화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어느 정도 국가부문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데 동의하고 있다.(new liberalism) 더 나아가 개인의 불평등을 정당하다고 보고 어떤 형태든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반대해 최소한의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와 이런 자유지상주의에 터잡아 세계화를 통해 자유와 성장을 확산하려는 신자유주의(neo liberalism) 는 당연히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를 통해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자본가들의 소득증대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라는 결함을 충분히 상쇄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를 벤치마킹, 선별적이고 세밀한 복지 지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놀랍게도 보수주의든 진보주의든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고 있다. 좌파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 공약으로 ‘3무 정책’ 즉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를 들고 나올 때만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라는 용어는 낯설었다. 권영길 당시 민노당 후보는 스웨덴의 복지 모델을 지향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스웨덴과 달리 인구가 많고 더욱이 국토가 좁은 나라다. 따라서 적절한 SOC건설을 통한 '다른 방향의' 복지의 확대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검토해야 할 복지정책의 대상은 스웨덴이 아니라 인구가 5천만이 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여섯 나라,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다. 그 중에서도 뒤의 네 나라는 모든 조건이 우리와 매우 유사하다. 이들 나라에서 시행해 성공한 정책과 실패한 정책을 살펴서 정책을 입안한다면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금 전 유럽은 재정위기를 앓고 있다. 그 재정위기는 과도한 복지비용의 지출 때문이다. 무분별한 복지의 확대를 내세운 포퓰리즘 정책에 기반한 큰 정부가 결국은 나라의 곳간을 거덜내고 빚더미에 올려놓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한번 시행한 복지정책을 되돌리긴 정말 어렵다. 지금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복지라는 달콤한 미몽에서 깨어나길 거부하는 몸부림이다. 정부부문을 성공적으로 축소하고 복지를 줄이는데 성공한 정부는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유일했다.


영국은 무상급식을 11%까지 줄였다. 무상급식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눈칫밥’ 문제를 없애기 위해 급식비를 행정당국이 징수해 학교에 일괄적으로 이전한다. 한때 복지국가를 지상명제로 삼았던 영국이 지금 무상의료정책인 NHS를 철폐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그들은 보편적 복지 정책을 버렸는가? 우선 보편적 복지는 높은 담세율로 인해 가처분소득이 줄게 되고 결국 성장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한때 담세율이 35%에 이르렀지만 대처 총리는 노조를 억제하고 민영화와 복지 축소를 통해 담세율을 25%까지 낮췄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는 필연적으로 복지의 품질을 떨어지게 만든다. 지금 무상급식이 시행되는 서울의 경우 도시락을 들고 가는 아이들이 20%가 넘는다는 것이 그걸 증명한다.


또 보편적 복지는 처음 계획한 것보다 복지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린다. 이 정부가 무상보육을 도입하면서 보육원의 시설을 네배나 초과하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처음 맞벌이부부를 위해 보육비를 지원한다는 정부계획은 탁상공론인 것이 드러난 것이다. 영국의 NHS가 앓고 있는 문제점도 똑 같다. 의사들의 진료수준은 떨어지고 앰블런스는 평균 1시간 40분이 넘어 나타난다. 의료수요는 엄청나게 증가해 국가예산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보편적 복지 정책이 막상 복지가 필요한 최저소득층과 차상위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더 나아가 팽개쳐 있는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희귀병 환자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복지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사각지대는 널려 있지만 보편적 복지가 이런 사각지대에 빛이 되지 못한다. 진정 우리가 평등 정신에 충실하려면 우선 이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 방법은 선별적이고 세밀한 복지다.


전원책 (자유기업원 원장, junwt@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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