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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의 추억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에 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개별 정책에 대해 사회가 양분되면서 찬반(贊反) 논쟁을 벌인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익집단으로서 영화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면 그렇게까지 논란이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반미(反美) 감정에 기름을 끼얹었다. 사실, 스크린쿼터는 조잡(粗雜)한 규제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극장주는 연간 1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 스크린쿼터의 본질은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극장주의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스크린 쿼터제 도입 후 영화산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긍정적


2004~2006년, 미국은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연히 영화인들은 쿼터 축소에 반대하였으나, 경제 관료들을 중심으로 개방론자들은 찬성하였다. 반대론자들은 쿼터를 축소하면 영화산업이 궤멸(潰滅)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쿼터 축소에 반대한 모(某) 교수는 “쿼터가 하루 축소되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0.6% 감소되고, 쿼터를 10일 축소하면 3,000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거의 괴담(怪談) 수준의 주장이다.


당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쿼터 축소에 찬성하였다. "스크린쿼터는 극장주에게 연간 1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할 것을 강제하지만 연간 몇 편의 영화를 상영할 것인가는 극장주의 자유이다. 따라서 극장주는 흥행작 몇 편으로 쿼터를 채우거나 수많은 영화를 단기간 상영할 것이다. 다수의 영화를 상당 기간 상영하는 선량한 극장주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2006년 스크린쿼터는 73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5년은 ‘광우병 파동’ 수준의 논란을 야기했던 스크린쿼터 축소의 결과를 살펴보는 것이 가능한 시점이다. 영화시장에 관한 몇 가지 통계치를 바탕으로 쿼터 축소가 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였다. 이를 위해 쿼터가 축소된 2006년 전․후 5년의 상황을 비교하였다.


<표 1> 스크린쿼터 축소 전ㆍ후 관객 수와 시장점유율


<표 1>에 의하면 쿼터 축소 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53%에서 44%로 하락하였다. 쿼터 축소 후 5년 동안 한국영화의 연 평균 관객 수는 약 2,300만 명 증가하였으나, 외국영화의 관객 수도 8,000만 명 증가하였다. 한국영화의 관객 수가 감소해서 시장점유율이 하락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림 1>을 보면 쿼터 축소 직후인 2008년까지는 일시적으로 외국영화의 관객 수가 늘어났지만 2009년부터는 감소하고 있다. 반면, 한국영화의 관객 수는 쿼터 축소 후에도 안정적인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림 2>는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의 장기적인 추세를 보여준다. 1971년 이후 두 개의 정점이 발견되는 데 첫 번째 정점은 1982년의 51.3%, 두 번째 정점은 2006년에 기록된 60.4%이다. 2006년의 시장점유율 60%를 예외적 현상이라고 한다면, 현재 한국영화는 빠르게 정점으로 가고 있으며 2012년에는 5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할 것이다. 따라서 2007~2008년의 시장점유율 하락을 쿼터 축소의 효과로 해석하기보다는 과열된 영화시장의 조정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림 1> 연간 관객 수: 2002-2011년 (단위: 만 명)



<그림 2>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1971-2011년 (단위: %)


일부에서는 쿼터를 축소하면 한국영화의 상영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제작이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표 2>를 보면 이러한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쿼터 축소 후, 연간 제작 편수는 82편에서 126편으로 증가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쿼터 축소 후 외국영화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흥행성(興行性)을 나타내는 편 당 관객 수는 164만 명에서 125만 명으로 감소했으나, 외국영화의 편 당 관객 수인 50만 명에 비하면 여전히 두 배 이상 많다. 2006년 이후 영화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편 당 제작비가 현실화된 것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또한,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외국영화의 편 당 관객 수는 2008년 이후 감소하고 있으나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2010년을 기점으로 반등(反騰)하고 있다. 쿼터 축소로 외국영화가 많이 수입되고 있으나, 흥행성의 측면에서는 한국영화가 여전히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표 2> 스크린쿼터 축소 전ㆍ후 편 당 관객 수


<그림 3> 영화 편 당 관객 수: 2002-2011년 (단위: 만 명)


끝으로, 쿼터가 축소되면 저예산 영화나 예술 영화가 상영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그림 4>에 의하면 관객 수가 1만 명 미만인 영화는 쿼터 축소 후 250편(5년 누적)으로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두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쿼터가 축소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연간 50편 정도의 한국영화가 조기(早期) 종영(終映)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쿼터 축소로 극장주의 영업의 자유가 확보되고 흥행성이 없는 영화가 조기 종영되었다면, 이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관객 수가 1만 명 미만인 영화의 대다수는 저예산 영화이거나 예술 영화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영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쿼터의 축소로 경쟁력이 없는 영화가 조기 종영된 것인지, 저예산 영화나 예술 영화의 상영 기회가 늘어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어떤 경우든 이러한 현상을 쿼터 축소의 부정적인 효과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림 4> 스크린쿼터 축소 전ㆍ후 한국영화 관객 수 분포 (단위: 편)


스크린 쿼터제 축소로 인한 우려는 기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축소해야


결과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의 부정적 효과는 크지 않았다. 쿼터 축소 후 한국 영화가 궤멸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영화가 2000년대와 같은 활황(活況)이 아니라고 해서 침체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스크린쿼터를 확대한다고 해서 한국영화가 호황을 누리는 것도, 축소한다고 해서 불황을 겪는 것도 아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한국영화의 경쟁력과 경기(景氣) 상황에 영향을 받지, 스크린쿼터와 같은 조잡한 제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효과가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은 정책이나 규제는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말 없는 다수보다는 목소리가 큰 소수에 의해 휘둘리기 쉽다. 조직화된 소수의 이익은 언제나 원자화(原子化)된 다수의 이익을 압도한다. 더구나, 국민은 이익보다는 손해를 민감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정부는 편익(便益)은 소수(少數)가 누리고 비용은 다수(多數)가 부담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둘러 싼 과거의 소동(騷動)은 이러한 이론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사례, 그 이상(以上)도 이하(以下)도 아니다.


오정일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jo31@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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