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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돌아오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실체


한국영화산업 관련 언론보도에서 매년 여름만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 문제다. 주로 블록버스터들 중심으로 한 시기에 영화 한 편이 스크린을 싹쓸이하다보니 영화 선택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영화계 수직계열화 대기업들에 대한 도의적 차원의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이 스크린 독과점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해당문제는 2006년 ‘괴물’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다 가장 크게 문제시 된 게 2011년 ‘트랜스포머 3’ 때다. ‘트랜스포머 3’는 개봉 당시 14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당시 국내 전체 스크린이 2229개였으니, 무려 63.7%의 스크린 독과점이 이뤄졌던 셈이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엔터미디어 2001년 7월 4일자 기사 ‘트랜스포머 흥행의 단순한 이유’는 “심지어 미국에서도 이 영화의 극장 점유율은 1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점점 우리는 글로벌 호구가 되어가는 건가”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개봉 첫 주 1420개 스크린을 장악했던 ‘트랜스포머 3’는 2주차에 벌써 113개 스크린이 빠져나가 1307개로 줄었고, 3주차엔 877개 스크린으로 뚝 떨어졌다. 보름 만에 543개 스크린이 빠져나간 것이다. 반면 같은 영화의 개봉 첫 주 스크린 점유율이 11%밖에 안 됐다던 미국에선 3주차에도 불과 4.2%의 스크린밖에 빠져나가질 않았다. 같은 기간 한국은 38.3%가 떨어져 나갔다.


올해 등장한 ‘트랜스포머’ 4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이보다 상황이 더 극단적이다. 개봉 4일차에 1602개 스크린으로 최다를 기록한 뒤, 불과 5일 후 1002개 스크린으로 급하락했다. 전체의 37.5%에 해당하는 600개 스크린이 일주일도 채 못 버티고 떨어져나간 것. 반면 미국에선 같은 영화가 4233개 스크린에서 시작해 개봉 14일차까지 같은 스크린 수를 유지하다 15일차가 돼서야 3913개 스크린으로 내려왔다. 7.6%만 떨어져 나갔다.


이 같은 구도는 한국영화시장에서 비단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니다. 나아가 여름 시즌에만 해당되는 얘기조차 아니다. 대부분 될성부른 영화들이 개봉 첫 주 어마어마한 스크린을 확보해 시장을 공략한 뒤, 개봉 일주일도 채 못되어 확보한 스크린에서 30~40%씩 줄인다.


말하자면 이런 구도다. 될성부른 영화가 등장하면 일단 개봉 첫 주 전체의 40%가 넘는 스크린을 독차지하며 일거에 관객을 끌어 모은다. 그러다 바로 다음 주에 스크린 수를 크게 줄이고 그 주말 등장할 새 될성부른 영화에 스크린을 내주는 식이다. 결국 한국영화시장은 될성부른 영화 한 편의 스크린 독과점에서 곧바로 다른 한 편의 독과점으로 신속하게 이동되는 초단기적 독과점 연쇄구도란 얘기다.


왜 이런 식의 구도가 성립된 걸까. 단순하다. 시장 성향 자체가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 분위기와 상관없이 무작정 자기들 멋대로 배급구도를 짜는 산업이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배급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최적화된 배급을 한 것뿐이다.


스크린 독과점 전략 덕에 배 이상 늘어난 ‘중박 이상’ 영화들


이제 한국영화시장 성향을 살펴보자. 먼저 한국시장이 기본적으로 몇몇 될성부른 영화들에 관객이 몰리는 쏠림 구조란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에선 전체인구의 5분의 1이 관람하는 ‘1000만 영화’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같은 인구비례를 미국시장 기준으로 산출해 봤을 때 미국에서 이에 부합되는 사례는 지난 10년 간 2009년 작 ‘아바타’ 단 한 편뿐이다. 반면 한국에선 같은 기간 총 10편이 나왔다. 거기다 한국은 연간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지난 5년 평균 3.5회로, 3.9회인 미국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더 적은 1인당 관람횟수에도 더 많은 ‘인구의 5분의 1 관람영화’가 쏟아진다는 것. 그만큼 다양성을 추구한다기보다 몇몇 영화들로 관객이 대거 쏠리는 트렌드성이 두드러지는 시장이란 얘기다.


물론 이처럼 강한 트렌드성 자체가 배급 측 스크린 독과점 전략 탓에 도출된 결과란 의견도 존재한다. 전체 스크린 중 63.7%가 ‘트랜스포머 3’를 트는 식이니 당연히 시장구도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아니겠느냔 주장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같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도 한국영화시장은 될성부른 영화 한두 편에 관객이 몰리는 쏠림 현상을 충분히 겪어왔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초로 여겨지는 1999년 작 ‘쉬리’부터가 그랬다. ‘쉬리’는 개봉 당시 전국 23개 극장에 걸리는 데 그쳤다. 당시 전국극장연합회 소속 극장수가 총 507개관이었으니 점유율로 따지면 4.5%에 불과했다. 이후 흥행가도를 달리며 상영관이 늘긴 했지만, 그래봤자 여전히 70여개 관 수준이었다. 전체의 14% 정도다. 그럼에도 ‘쉬리’는 최종적으로 전국 582만 명의 관객을 동원, 1999년 연간 총 영화 관람객 수의 10.6%(서울관객 기준)를 차지했다. 이 10.6%를 지금 시장규모로 환산해보면 약 1400만 관객이 된다. 그 정도 관객동원은 아직 한국에서 이뤄진 바가 없다.


결국 몇몇 될성부른 영화에 시장 전체가 쏠리는 분위기는 스크린 독과점 상황이건 아니건 유사했단 얘기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그랬고 ‘친구’도 그랬다. 이 같은 흐름을 꾸준히 지켜보다, 아예 개봉 시 스크린을 대폭 늘려 초반에 치고 빠지는 전략을 실험하기 시작한 게 2003년 ‘살인의 추억’ 무렵부터다. 어차피 특정영화에 쏠림이 크게 일어나는 시장분위기에서, 그 쏠림을 스크린 대량 확보를 통해 단기간으로 압축, ‘회전율’을 높여보잔 전략이었다.

그 결과 2004년 1억3517만 명대였던 한국영화시장 총 관람객수는 2013년 2억1332만 명대로 무려 57.8% 성장했고, 한국영화 관람객 수도 8019만 명에서 1억2727만 명으로 대폭 성장했다. 한국영화 개봉 편수 역시 2004년 74편에서 2013년 183편으로 배 이상 늘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초단기 독과점 연쇄배급으로 인해 오히려 흥행분포의 쏠림이 줄고 각 영화들의 전반적 흥행 상승효과를 가져왔단 점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전국 관객 수 집계를 시작한 2005년, 흔히 ‘대박’ 라인으로 불리는 전국 300만 관객 이상 동원 영화는 모두 8편, 그중 6편이 한국영화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이르러선 총 19편의 영화가 이 라인으로 들어섰고, 그중 14편이 한국영화였다. 150만 명 이상 ‘중박’ 라인까지 범위를 넓혀 봐도 2005년 21편에서 2013년 42편으로 딱 배의 영화들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게 되었다.


될성부른 몇몇 영화들만 먹고 살게 해준다던 스크린 독과점 전략이 오히려 불과 8년여 전보다 배 이상의 영화들을 손익분기 안정권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영화 투자수익률도 2004년 3.1%에서 2013년 15.2%로 급호전됐다. 동 시기에 다양성을 제공하는 방식보다 트렌드성을 살려 재빨리 치고 빠지는 전략이 오히려 다양한 영화들에 기회를 줌으로써 시장을 고르게 살찌우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


자연스럽게 설정된 시장에 인위 가해서라도 다양성 확보해야 한다는 위험한 주장


지난 해 7월 25일 대학 영화영상 관련학과 교수 56명으로 구성된 ‘반스크린독과점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대학영화영상관련학과교수성명서 모임은 “특정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해서 흥행하고 다수 영화가 피해를 보는 상황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 그것은 갑과 을이 상생하는 자율적 시장질서가 아니다. 국회는 스크린 독과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여야 공동으로 입안하고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수혜를 본 ‘특정영화’들이 불과 8년여 만에 배 이상 늘어난 현실에 대해 이들은 입을 연 바 없다. 어차피 스크린을 독과점 수준까지 확보할 수 있는 영화들은 제작과 배급, 상영을 모두 거머쥔 수직계열화 대기업 영화들뿐이란 주장은 극장체인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지난해 배급순위 1위를 차지한 넥스트월드엔터테인먼트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물론 애초 스크린 독과점 문제의 중심 화두였던 ‘영화 선택의 다양성’ 측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어느 분야건 다양한 선택지의 확보만큼 건강하고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해내는 방안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설정된 시장 구성에 인위를 가해서라도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도 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시장에 적응해 최적화시키는 배급을 지양한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배급을 해야 하느냔 말이다. 스크린 확보 상한선을 정한 뒤, 텅텅 비는 상영관들과 미어터져 제때 영화를 보기도 힘든 상영관이 나란히 나열되는 진풍경을 지켜봐야 한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공적 개념이 나서 고르게 영화를 틀도록 규제하는 기구라도 만들겠단 건가. 그럼 대체 그런 ‘고른 배급’을 계획하는 이들은 또 누가 될 것인가.


영화로도 만들어진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엔 18세기 독일 오페라계 상황을 묘사한 재미있는 대사가 등장한다.


“‘피가로의 결혼’을 보다 황제가 한 번밖에 하품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 황제가 3번 하품하면 그 오페라는 그날 바로 문을 닫아. 두 번 하품하면 일주일 정도 상연되는데, 한 번 하품하면 그래도 9번은 상연할 수 있거든.”


자, 그 시절로 그렇게도 돌아가고 싶은 건가?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중문화 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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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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