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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빵집 vs. 동네 빵집


2013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우리나라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매일이 폭염과 열대야의 연속이었다. 더위로 인한 여름날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느라 바빴던 올 여름에는 느닷없는 폭우로 가는 걸음이 길가에서 묶이기도 했다.


주거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어린 아이가 있는 필자는 생활시설들의 근접성과 편의성을 주거지 선택의 최우선 조건으로 둔다. 병원, 시장, 마트, 음식점, 그리고 필자에게 주식이나 다름없는 좋은 빵집이 주변에 얼마나 잘 구비되었느냐가 그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제과점 프랜차이즈가 있다. 외부로 나갈 필요도 없이 승강기만 타고 내려가면 바로 그 “유명한 빵집”에서 쉽게 빵을 살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문 여는 것조차도 두려운 찜통더위지만 빵을 사기위해서 큰 길 건너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는 자그마한 “동네 빵집”을 찾아간다. 집에 빵이 떨어졌는데 그 집이 쉬는 날이거나 영업시간이 끝난 뒤라도 상가의 그 유명한 빵집은 가지 않는다. 그저 동네 빵집이 문을 열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소위 대기업의 이름값과 이용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 빵집을 이용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동네 빵집의 빵이 더 맛있고 질 좋기 때문이다.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이 동네 빵집에서 만든 빵을 맛본 후 나는 그 유명한 빵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그것이 동네 음식점이고 그것이 동네 빵집이어서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진출로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니 군산의 한 빵집, 안동의 한 빵집은 언제나 손님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심지어 그 곳들은 지역의 명소일 뿐 아니라 해외여행객에게도 꼭 찾아가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이들의 성공은 화려한 마케팅의 기법도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나아가 동네 주민들의 연민이나 의리 때문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오직 맛있고 질 좋은 빵을 고객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필자가 어렸을 때에도 동네에는 그저 동네 빵집과 나름 브랜드 빵집이 있었다. 지금과 같이 대기업 정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나름 브랜드 빵집은 규모나 자본력 면에서 동네 빵집에 비해 힘 있는 빵집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나름 브랜드 빵집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틀림없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소비자 선택의 본질은 품질,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법, 제도는 실패하게 되어있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의 취지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그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는 행위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임에 필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단순히 특정 업종은 중소기업만이 해야 하는 ‘적합’한 것이라고 규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조급한 처방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냐는 선택의 배경에는 그것이 국산이냐 외국산이냐 혹은 대기업의 것이냐 아니냐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품질이 얼마만큼 좋은지, 그 품질에 합당한 가격인지를 소비자는 비교해서 판단한다. 대기업의 이름이 신뢰도를 더해주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제품이 최종적으로 선택받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대기업 제품의 신뢰도 역시 과거 그 기업의 제품이 소비자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품질이 동반되지 않는 한 전략적 마케팅이니 광고·판촉이니 하는 것들은 잠시 효과를 보고 사라지는 거품에 불과하다. 이런 요인들은 한두 번 정도의 유인이 될 수는 있으나 소비자의 합리적인 심판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소비자는 경험으로 학습하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정책, 법, 제도는 예외 없이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의사가 병의 본질에 대한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떻게 환자에게 제대로 된 처방과 치료를 할 수 있겠는가. 문제의 본질을 무시한 채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잘해봤자 인기영합주의(populism)만도 못한 부산물이 되고 만다.


어떤 상품이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방법은 바로 ‘품질’ 뿐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질 좋은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비자는 ‘훨씬’ 현명하다. 정부는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경험과 선택의 기회를 제한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김성준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songjune@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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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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