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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과 대기업집단 정책


올해 들어 필자에게 대기업집단에 대해 문의해오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 보수언론, 진보언론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올 뿐 아니라, 정부부처 등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문의가 쇄도한다. 이는 필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집단을 연구해왔던 전문가들이라면 모두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문의내용을 보면 단순한 인터뷰나 인용목적뿐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이나 기초적 사실에 대한 문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4,5년 전에도 경험했었다. 당시 참여정부는 주도적으로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그 일환으로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대폭적 완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참여정부 정책기조의 변화 및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달라진 정치상황으로 인해 언론사의 취재와 관련부처의 문의가 급증했었다. 그리고 다시 8년 전에도 동일하게 언론사와 관계부처로부터 문의가 빗발쳤던 적이 있었다. 당시는 참여정부 초기였으며 대기업집단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고 제한하던 시절이었다. 출자와 투자간 논쟁이 불붙으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쟁이 정치권에서 뜨겁게 오가던 시절이기도 하다.


4,5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대기업집단 논쟁


필자는 올해 총선과 대선이 없었다면 왜 갑자기 이렇게 대기업집단과 관련된 소동을 벌이는 지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최근 4,5년간 대기업집단에 대한 연구에 큰 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연구 자체도 급격히 감소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공정거래전문 과정에서 강의해 왔지만, 대기업집단정책은 인기 없는 주제 중 하나였다. 더구나 필자가 출자총액제한제도, 순환출자구조, 가공자본, 소유지배괴리지표 등에 대해 설명하면, 수강자 중에서는 왜 이미 폐지된 규제에 대해 강의하는지를 질문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정치적 논쟁이 있는 이슈이기 때문에 현 정부 말기나 혹은 신정부들어서면서 다시 논의가 일어날 중요 쟁점이라고 답했지만, 작년만 해도 필자의 설명에 동의하는 청중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렇게 대중의 관심밖에 있던 대기업집단 정책은 올해 들어 정치권에 있어 태풍의 핵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실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감정적 주장이 난무하다보니 기업집단은 마치 양극화와 일자리부족의 원인인 양 취급받고 있다. 심지어 기업집단의 제과사업 진출이 동네 빵집을 망하게 하는 요인으로 과대 포장됐다가 사업철수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에는 겨우 대형마트용이나 사내용 제과 사업부가 없어지는 수준이므로 서민생활과 관계없다고 말을 바꾸기까지 한다. 국민들이 본질에 대한 깊은 인식 없이 정치와 정서에 휘둘리다보니 비논리적인 수준의 말들이 넘쳐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터뷰를 통해 기업집단에 대한 필자의 설명을 들었던 한 언론인조차 “설명은 이성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감정적으로는 수용이 잘 안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기자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보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몰아가는 정치적 행위가 얼마나 쉽게 국민들을 호도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인지 알 수 있다. 감정에 의존하여 판단하게 될 경우 정치가 쉽게 우리 생각 속에 들어오고 규제도입에 감정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규제가 들어온다 한들, 현실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규제의 비효율성이 문제로 제기되어지다가 다시 폐지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왜 정치시즌마다 대기업집단은 쟁점으로 부상되는가?


특이한 사실은 4,5년을 주기로 하는 선거철마다 기업집단 정책이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된다는 점이다. 기업지배구조가 정치적 이슈이라면 이는 민간 대기업집단에만 국한되는 쟁점이 아니다. 사외이사의 선임과 정부의 개입 등 다양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지배구조는 한때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다. 과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의 경우, CEO의 임명이나 임기가 정권의 교체와 관련되는 것 또한 지배구조상의 중요한 논쟁거리이다. 그리고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올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돼온 공기업에 대한 지배구조야 말로 차기정권 후보자들이 진지하게 공론화하여 논의해야할 대상이기도 하다. 한편, 경쟁 이슈도 마찬가지이다. 부당내부거래로 적발된 사례는 민간 기업집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은행과 공기업 중에는 경쟁기업을 배제시키고 계열사와 부당한 내부거래를 하다가 이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로 부터 시정조치를 받은 경우도 있다. 이렇듯 한국의 민간 대기업집단만이 기업지배구조상의 논쟁 대상도 아니며 유일하게 경쟁 제한적 행위로 적발됐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정치시즌마다 유독 민간 대기업집단은 정책적 쟁점으로 부상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공무원, 금융노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분열은 방지하면서 투쟁노선의 일원화를 위해 민간 기업집단이 전략적 쟁점대상으로 선택된다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이러한 설명도 설득력이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경제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 정책을 대책 없이 도입하려고 한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객관적 사실을 이해하기 보다는 감정과 정서로 판단하려하는데 있으며, 정치는 단지 이를 경쟁수단으로 이용하여 쟁점화시키려 할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이라 할지라도 객관적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감정의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정치적 행위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이 소모적 반복과정에서 벗어나는 길


이명박 정부 출범당시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이니 더 이상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없지 않겠냐고 질문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현 정부의 임기동안이 대기업집단 연구를 위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현 정부의 임기 말, 즉 지금쯤에는 정치의 계절이 돌아올 것이고 마녀사냥이 필요해질 경우 다시 대기업집단에 대한 논쟁이 불붙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상을 했던 이유는 4,5년 전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폐지에 앞장섰던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8,9년 전 규제 도입에 앞장섰던 인물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4,5년 전 규제폐지를 주장했던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지금에 와서 다시 규제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주장대로 차기정부에서 규제가 강화된다면 다시 상당수는 차기정부의 임기 말이 되는 4,5년 후에 말을 바꾸어 규제폐지를 주장할 것이다. 과도한 규제로 인해 나타날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집단의 경제력 증대,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전문다각화, 계열사 간 거래와 시너지효과, 기업성과와 자본시장의 견제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논쟁하여 판단하는 과정은 환영되어야할 일이다. 그러나 뭉뚱그려 기업집단이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서 비판하는 태도는 소모적 논쟁을 반복시킬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한다는 것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kim@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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