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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시리즈 5] 김종인씨와 독일의 경제민주화 개념


경제민주화의 이념적 고향은 한 때 사회주의 이념이 강력했던 독일이다. 비(非) 유럽권에서는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독일에서조차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유물로서 독일의 경제사나 또는 경제사상사에 등장하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경제민주화의 독일어 표현은 ‘경제의 민주화’로서 Demokratisierung der Wirtschaft이다.


그리고 독일에서 공부한 김종인씨가 경제민주화를 한국에 도입했다. 그가 경제민주화의 대부(代父)이다. 그 의미는 독일에서 사용한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면 왜 다른가? 그 자신이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전략 때문인가?


1970년대 독일의 정치화두였던 ‘경제민주화’도 결국 실패, 이후 사라진 개념


경제민주화는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그 이념가들과 경쟁했던 번슈타인(E. Bernstein)과 나프탈리(F. Naphtali) 등이 최초로 주창한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요체였다.


자본주의는 물론이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소련식 계획경제는 각기 나름대로의 독재로 인하여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사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의 독재는 자본과 대기업이고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이고 소련식 계획경제는 소수 엘리트의 독재이다. 사회민주주의는 그 어떤 유형의 독재에도 반대한다.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철학은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참여는 정치적 차원의 참여와 경제적 차원의 참여로 구분된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이 다른 모든 계층과 동등한 자격으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는 실현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경제적 삶에서도 자본가와 똑같이 참여하지 않고는 사회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경제민주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는가? 민주화의 핵심은 집단적 (공동)결정(co-determination)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정치적 삶에서 공동결정권을 확보했듯이 경제적 삶에서도 노동자들의 참여권을 허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공동결정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개별기업의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기업경영 참여이고 다른 하나는 거시경제 차원이다. 거시경제조종에의 노동자 참여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비롯하여 국민경제적 투자규모와 저축규모, 각 기업들의 사업 분야 조정, 물가수준 등, 거시조정에의 노동자 참여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후부터 히틀러시대까지 이 같은 참여를 실현하려고 애쓴 것이 독일이었다. 그러나 히틀러 정권의 붕괴와 1948년 독일 연방공화국의 형성이후에는 경제의 민주화 논의가 소멸되었고, 그대신 경제자유화(Liberalisieung der Wirtschaft)가 중시되었다. 그 결과는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번영이었다.


그런데 독일이 ‘68문화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1970년대에 다시 경제민주화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것이 마치 시대정신인 것처럼 정치의 화두가 되었다. 이때의 경제민주화의 개념은 많은 변화를 거쳐 두 가지로 지칭되었다. 하나는 기업의 경쟁력을 손상시키는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이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노(勞)·사(使)·정(政) 위원회라고도 부르는 협조적 행위(concerted action)제도이다. 이 두 제도는 모두 실패한 제도로 판명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980년대 이후부터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대기업 규제 등으로 사용하는 ‘경제민주화’ 헌법적 정당성 없어


흥미롭게도 1987년 9차 개정된 현행헌법 제119조 제2항에 “경제의 민주화”가 도입되었다. 이 조항을 ‘김종인 조항’이라고도 말한다. 그가 ‘경제의 민주화(독일어 표현: Demokratisierung der Wirtschaft)’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그가 만든 말이 아니라, 그가 1970년대에 독일에서 배웠던 것을 전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종인씨를 포함한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를 대기업 규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독일에서 사용했던 경제민주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119조 2항을 아무리 읽어봐도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규제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대기업규제 등을 뜻하는 경제민주화에는 헌법적 정당성도 없다.


그럼에도 왜 김종인씨는 경제민주화를 대기업 규제로 이해할까? 김종인씨가 1987년 9차 개헌에서 경제민주화를 도입할 당시 그가 연상했던 경제민주화는 1970년대에 그가 독일에서 배운 기억이 있는 일종의 노사정위원회 제도와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1987년 9차 헌법 개정 시에 이미 경제민주화 개념은 독일에서조차 낡아버린 개념이라는 것을 김종인씨는 몰랐을까 아니면 알았을까? 몰랐든, 알았든, 그 도입은 무식의 소치일 뿐이다. 김종인씨가 대기업규제의 의미로 둔갑시켜 사용하는 것은 그의 포퓰리즘 전략이 아닌가? 의심스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정치판이 정체불명의 경제 민주화니 하며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김종인씨는 '절제 없는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사람은 정서적 불구자'라는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주장을 들어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는 사람을 정서적 불구자라고 혹평하고 있다. 그러나 새뮤얼슨은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가 폭삭 망하기 3개월 전에도 소련식 계획경제도 마찰 없이 아주 잘 번영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이런 얼빠진 학자의 말을 인용하는 사람이 정서적 불구자가 아닌가.


유령 같은 경제민주화! 정치권을 비롯하여 한국사회 전체가 김종인씨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라경제를 망치는 그런 개념은 내버리는 것이 옳다.


민경국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kmin@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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