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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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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전략회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I. 실질적 실업자 400만 명 시대

현재의 고용상황은 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7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실업자는 400만 명에 이른다. 공식 실업자 82만 명에 더 넓은 의미의 실업자를 포함하는 수치이다. 실질적으로 실업자나 다름없는 주당 18시간 미만의 불완전취업자 96만3천 명, 취업준비자 59만1천 명,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는 사람 147만5천 명, 그리고 구직단념자 16만2천 명 등을 합한 것이다.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재계 대표 간에 ‘투자와 고용확대를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는 하루 전에 일정이 잡힌 것으로서 이처럼 급박하게 회동이 이루어진 것은 올해 경제운용에서 투자확대와 고용창출이 갖는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에 투자와 고용 확대를 주문했고, 재계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와 고용계획 발표로 화답(和答)했다. 발표 자료에 의하면 30대 그룹의 올해 투자액은 작년보다 16.3% 늘어난 87조150억 원, 신규 고용은 작년보다 8.7% 증가한 7만9천 명에 이른다.

그동안 역대정부의 고용정책은 형식적이었다. 30대 재벌로부터 일정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고용문제 해결에 갈음하려 했기 때문이다. 재계 입장에서도 굳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었다. 투자 약속은 일종의 계획으로 그 자체가 ‘구속력’을 갖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일자리 창출 요청은 결코 ‘쉽지 않은 주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문 역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동안 고용정책은 사실상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통해 필요한 만큼의 사회적 내지 공공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그 소임으로 여겼다. 경제안정화 정책의 외연에 공공부문의 고용정책이 자리를 잡았다.

이 같은 정책관행에 비춰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재계와의 간담회에서 밝힌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확산된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실물부문에 미친 여진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일자리 부족’은 전 세계의 화두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경기회복이 매우 빠른 편이지만 회복세가 아직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는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고용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그러나 고용전략회의의 ‘유효성’은 ‘시의성’과는 별개이다. 고용전략회의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새로운 시각과 보다 큰 틀에서 정책 각론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고용전략회의가 과거의 다양한 고용대책과 대비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즉 상황 변화를 살피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보여주기 식의 대책회의’에 그칠 개연성이 크다.

2. 고용문제는 구조조정과 동전의 앞뒷면 관계

고용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상황 변화는 투자와 고용 간의 관계가 과거와 같이 “안정적이고 선순환(善循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투자가 충분한 고용을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용유발계수’의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에 우리나라 전체 산업에서 10억 원을 생산하는데 10.9명이 소요됐던 것이 2007년에는 8.2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제조업만 보면 같은 기간 동안 고용은 4.4명에서 3명으로 더욱 줄어든다. 이 같은 고용유발계수의 저하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해석되었고, “실업문제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과 더불어 정책당국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고용유발계수 저하는 자연스런 추세이다. 생산이 고도화되면서 그만큼 사람을 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고용유발계수 감소를 뒤집어 보면 노동생산성 증가를 의미한다. 최근의 임금 상승은 상당부분 높아진 노동의 생산성을 반영한 것이다. 경제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유발계수 감소는 ‘재앙’이 아닌 ‘축복’이다. 결국 고용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덜 필요해진 만큼 이들을 새롭게 필요로 하는 취업기회를 충분히 창출하지 못한 것에 있다. 따라서 고용문제는 구조조정의 문제와 ‘동전의 앞뒷면’의 관계를 이룬다. 이때 구조조정은 사람을 해고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자원을 새로운 산업으로 유연하게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고용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최근 일정기간 동안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와 없어진 일자리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용전략회의’의 역할은 노동시장 혁신의 유인을 보호하고 신산업이 창출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노사문화 선진화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접근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사실은 ‘일자리 프렌들리’ 정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논리가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대기업 중심’의 경제운영으로 오해된 것이다.


3. 세제지원의 고용에 대한 효과 분석


고용전략회의는 고용 확대를 위해 보다 ‘정밀한’ 정책지원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송희영의 칼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1) 내용을 요약하자면 “조선ㆍ해운업으로 고속 성장한 STX그룹 임직원은 대략 4만7000명이다. 이 중 중국인이 2만7000명, 유럽인이 1만6000명, 나머지 4000명 안팎이 한국인이다. 한국인에게 제공한 일자리는 9%에 못 미친다. STX가 그간 해오던 방식으로 그룹을 키워간다면 외국인에게 9개 일자리를 줄 때마다 한국인에게는 고작 1개의 일자리 선물이 배달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누구를 위해 세금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금융 편의를 봐줘야 하느냐 하는 문제제기이다.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는 오랫동안 투자촉진을 위해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를 운영해 왔다. 신규 투자금액의 10%를 세금에서 깎아준 것은 사실 고용촉진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의 경우 투자액의 상당부분을 해외에서 집행하기 때문에 투자촉진이 국내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면 누군가 더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조세감면은 ‘조세지출’의 일환으로 엄연히 ‘비용’을 유발한다. 정부의 유인제공은 고용창출에 연계되어야 한다. 즉 ‘고용친화적’ 유인 제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국내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글로벌 기업의 해외 진출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해외진출이 이루어지면 기획 수립, 재원 조달 및 마케팅을 위한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들 일자리는 가장 고급스러운 일자리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아웃소싱(외주)을 위한 해외 진출 여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이때 이들 글로벌 기업의 해외투자에 세액공제 형태로 유인을 굳이 제공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정밀한’ 정책지원의 의미는 세액공제가 고용에 미치는 효과와 그 경로가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원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효과의 전달체계를 분명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조업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제도 및 경영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고용전략회의’는 우리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의 국가인지 면밀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취업조건부 학자금 대출제도’ 영향 평가


우리나라의 고용시장은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의 뿌리는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데 있다. 이는 높은 대학진학률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한해 60만 명 정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그 중 53만 명 정도가 대학에 진학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86% 정도로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리고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직장은 주로 화이트칼라의 소위 '고급 일자리'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용구조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게 되어 있다.

최근 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그룹의 ‘고용 인원’은 2005년 43만9776명에서 2008년 44만1739명으로 거의 제자리다.2) 대졸자에게 허용되는 신규 일자리는 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생의 눈높이와 좋은 일자리 간의 괴리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다. 눈높이를 낮추라면 모욕적인 언사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이 그렇다. 왜 그런가? 경쟁을 억압한 ‘평준화 교육’의 역작용이다. 사회 조기진출에 대한 탐색이 사실상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청소년은 대학 문턱까지 모두 일렬로 세워져 있다.


대학진학률이 80%를 훌쩍 뛰어 넘는 상황에서 “취업조건부 학자금 대출제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취업조건부 학자금 상환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정부에게는 큰 재정 부담을 안길 것이 명약관화하다. 자신의 진로를 ‘조기’에 탐색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갖추고 이를 설득하는 것이 구인난과 구직난의 고용시장의 이중구조를 혁파하는 길이다. 노동의 공급조건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데 적합한지 여부를 살피는 ‘고용전략회의’가 되어야 한다.


일자리는 개인에게는 생활 수단인 동시에 자아를 실현하는 통로이다.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일자리는 소득의 ‘샘’이며, 소득순환의 출발지이다. 고용 창출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고용위기는 기업의 투자를 독려해서 풀릴 일이 아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나누기’ 등의 미봉책으로 접근할 사안은 더욱 아니다. 그리고 노동유발계수 감소를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혁신을 북돋고 신(新)산업을 일구어 내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과 경제의 유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고용비상 상황에서의 ‘고용전략회의’는 시의 적절하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꾀하지 못하면 과거의 유사한 그런 저런 ‘고용대책’과 차별화될 수 없다. ‘고용전략회의’가 민ㆍ관ㆍ정(民ㆍ官ㆍ政)이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아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는 통로가 될 때, 비로소 ‘전략’의 의미가 부각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략이 부재한 전략회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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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희영, 『기업의 이익, 국가의 이익』, 조선일보 송희영칼럼, 2009. 10. 23.

2) 윤창현, 『고용의 양극화를 깨라』, 한국경제 다산칼럼, 201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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