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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2월 11일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각료로서는 금기인 타 부처 간섭에 해당하는 발언을 하여 주목을 받았다. “기업은 우주선으로 달나라 여행을 가는 시대인데, 학교 교육은 농경사회 수준이다”1)라는 그의 말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현재 우리 교육이 사회의 흐름이나 산업계의 수요를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교육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혀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와 관련하여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면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공고, 공대 등 학교교육이 엉망입니다. 학교가 산업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니 기업들이 (신입사원대신) 경력직만 뽑으려 하지 않습니까. 교육과학기술부가 변해야 합니다. … 선생을 위해 학생들이 원하지도 않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며 … 산업현장의 수요와 동떨어진 교육이 청년실업 문제의 근본원인이다. … 첨단 직종도 아닌데 생산직원들이 제대로 일하려면 2년이 걸린다. … 학교가 그만큼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면 마치 노동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한 판 싸움을 벌일 듯하다. 그러나 현 정권의 각료가 타 부처 업무의 실책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현행 학교교육이 현실을 반영하는 수요와 한참 동떨어져 있음을 인정한 점이다. 즉 학교교육이건 직업교육이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소요경비가 턱없이 상승하는 것이다. 학교 내 직업교육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졸업생이 취업한 기업에서 필요한 능력과 기능을 재교육해야 하고 기업 부담이 엄청나게 올라가게 되고, 따라서 갓 졸업한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사원을 채용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의 원인과 책임이 상당부분 학교교육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교육계에서도 할 말이 전혀 없지는 않은 듯하다. 이에 대한 반대 논거로 교육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인성교육 논거이다. 인성교육을 위하여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지식이나 기능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논거이다. 이 논거의 부당성은 필자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므로 상론을 피하도록 한다.2)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인성은 지식과 기능을 떼어서 따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이른바 교육의 내재적 가치 강조이다. 교육은 내재적인 가치를 가지는 활동으로서 교육 이외의 여타의 목적에 봉사하지 않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내재적 가치는 교육이라는 활동이 다른 여타의 활동에 환원되지 않는 독특한 특성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교육학 내부에서 매우 큰 매력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논점이다. 필자도 여기에 동의하지만 교육의 내재적 가치 및 목적이 존중된다고 해서 반대로 교육이 다른 여타의 가치에 봉사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온당하고 교육에서 추구되는 여타의 가치를 부정할 경우 등장하는 논거가 바로 교육논리는 여타의 논리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이분법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여타의 논리를 배제한 순수한 교육의 논리가 있다는 주장의 바로 그 ‘교육논리’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3)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배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내적 논리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믿는 교육학 내부의 논거는 결론적으로 교육(특히 학교교육)이 현실의 수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청년실업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하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셋째, 교육의 전문성 논거이다. 교육의 전문성은 헌법 제31조 4항에 의하여 보장된 헌법적 가치이다. 필자는 이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전문성은 우리 교육의 무한발전을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제고해야 할 덕목이고 가치이다. 적어도 교직이 전문직이라고 주장하려면 교육의 전문성은 더욱 존중되고 신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의 전문성이 교육논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외골수로 빠진다면 그것은 교육의 전문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더욱이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 중심의 사고, 즉 교육공급자 중심이 되어버린다. 노동부장관이 “선생을 위해 학생들이 원하지도 않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지적한 불행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교육계 내부의 노력도 있었다. 1985년 이후의 정권은 대통령 직속 교육정책자문기구를 제각기 다양한 형태로 조직하여 이른바 ‘수요자 중심 교육’을 제안하고 주장한 바 있다.4) 그러나 교육당국과 이들 기구에 의하여 주창된 ‘수요자 중심 교육’은 여전히 ‘공급자의 눈’으로 본 ‘수요자 중심’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 사실이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 늘 수요자 편이 아닌 관(官)주도 또는 국가주도로 선도되어 왔다. 그렇다면 진정한 ‘수요자 중심’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부장관을 비롯한 여러 뜻있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교육문제의 해결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는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일이다. 앞서 인용한 노동부장관의 발언 중에 “기업은 우주선으로 달나라 여행을 가는 시대인데, 학교 교육은 농경사회 수준”이라는 말은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인류가 유사 이래 영위한 문명생활은 크게 전통사회, 산업사회, 지식기반사회라는 패러다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표> 세 가지 패러다임의 특징비교


<표>에서 디지털 혁명을 전환점으로 하여 지식기반사회 패러다임이 도래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 변화(예컨대, enculturation, acculturation)와는 달리 패러다임은 공존 속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패러다임 변혁(paradigm shift)라고 한다. 패러다임 변혁을 예견한 대표적인 것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발언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바꿔야 산다”라는 이 회장의 언명은 패러다임 변혁의 특징을 간명하게 드러내 준다.

다시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 부응해야 한다는 논거로 돌아가자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요구하는 ‘수요자 중심’은 기존의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모색될 수 없는 것이다. <표>에서 열거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요구되는 특징들은 과거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통용되던 단순계 사고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잡계 특징을 반영한 교육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적어도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융합’이고, 다른 하나는 ‘창발’이다. 산업과 문화 등의 이종 결합을 지칭하는 융합은 교육에서도 그 중요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육은 전문성과 자주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편협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융합의 견지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교육과 과학, 교육과 기술의 융합은 이미 이명박 정부가 정부조직을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하면서 시도한 바 있지만, 물리적 정부부처 통합이외에 화학적인 융합이 성과를 보았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교육과 고용의 융합의 중요성은 앞서 인용한 노동부장관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육과 학예, 스포츠, 연예와의 융합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김연아 선수의 성적은 체육 분야만의 성과인가, 음악의 성과인가, 교육의 성과인가? 아니면 연예와 광고산업의 열매인가? 김연아 선수의 업적은 융합의 개념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교육은 자주성과 전문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빌미로 고립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융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전문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창발’이란 개념은 나비효과, 소용돌이(turbulence) 등의 복잡계를 설명하는 또 다른 중요 개념이다. 일상적으로 ‘갑자기 튀는 현상’이다. 경제 분야에서 2008년 금융위기,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현상 같은 현상이나 전혀 예기치 않던 기업이 급상승하는 현상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일류 지향도 마찬가지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베이징에서 우리 현실이 새로운 패러다임 변혁에 못 미치는 세태를 꼬집어서 “정치는 4류, 행정관료 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지적함으로써 1등 기업 추구를 천명한 바 있다. 현재 삼성이 전자와 몇몇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이 회장의 선견지명적인 사고이기도 하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바로 다름 아닌 패러다임 변혁에 대한 예견이다. 기업이 2류에 머무르는 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요구하는 ‘창발’은 기대하기 어렵다. 1류 기업에는 창발을 주도하는 인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2002년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라고 한 바 있다. 여기서 ‘탁월한 한 명의 천재’는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이해되는 단순계적 서열 1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교육상황에 적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개념은 ‘내생적 진화와 외생적 차별화’5)이다. ‘차별’을 단순계적 사고에서 이해하면 ‘불평등’을 지칭하고, 산업사회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면 인종, 성별, 신분 등(전통사회의 특징)에 따른 공정하지 못한 가치체계이지만, 지식기반사회의 복잡계 사고에서는 더 이상 이러한 비윤리적 가치가 아니다. <표>에 소개된 ‘노마드(nomad)’, ‘지식근로자’, ‘웻웨어(wet-ware)’ 등의 개념은 차별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수긍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차별’은 교육에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무엇보다도 단순계 특징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즉 단순계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단순계에 의존한 단순하고 그릇된 이분법을 폐기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공교육/사교육, 평등/수월성, 교육논리/경제논리라는 조잡하고 불합리한 이분법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또한 과도한 평등의식을 폐기해야 한다.6) 특히 교육 만악(萬惡)의 근원인 평준화 정책의 폐기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7) 평준화정책은 단순계 사고로 보더라도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조장하는 증후군이 포착되며,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는 더더욱 들어맞지 않는 폐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의 교육은 융합ㆍ창발ㆍ차별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양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설파한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단순계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 것이며, 이는 바로 요즈음 회자되는 ‘파괴적 개혁(disruptive innovation)’과 맞닿아 있다.8)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육 현실은 여러 분야에서 암암리에 산업사회 패러다임은커녕 전통사회 패러다임조차 탈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교육당국은 ‘관제(官製)자율’, ‘짝퉁선택제’ 등 여전히 관주도의 국가개입을 통한 사회공학적 계획 의도(Grand Social Engineering Project)를 포기하지 않은 현실이 답답함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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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청년실업도 결국 잘못된 교육정책 탓』, 2010년 2월 11일자.

2) 김정래, 『인성교육이 되는 학교 시험공부』, KERI 칼럼, 한국경제연구원, 2010. 2. 3, www.keri.org 참조.

3) 김정래, 『경제논리, 교육논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KERI 칼럼, 한국경제연구원, 2009. 8. 31,

www.keri.org 참조.

4) 제5공화국의 ‘교육개혁심의회’, 노태우 정부의 ‘교육정책자문회의’,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 노무현 정부의 ‘교육혁신위원회’,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자문회

의’가 그것이다.

5) 좌승희, 『진화를 넘어 차별화로』, 지평, 2008.

6) 김정래, 『평등주의로부터 선진국으로 가는 교육』, 자유기업원 Executive Essay No.257, 2005. 1. 6,

www.cfe.org 참조.

7) 김정래, 『고혹 평준화 해부』, 한국경제연구원, 2009.

8) 크리스텐슨, The Innovator's Dilemma, 이진원 역, 『혁신기업의 딜레마』, 세종서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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