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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규제 만능에서 벗어나고, 시민도 성숙해져야


‘선행학습금지법’을 통한 정부의 교육 규제


규제를 ‘손톱 밑의 가시’, ‘암 덩어리’, ‘원수’로 질타해 온 정부가 또 규제의 칼을 빼어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사교육 대책의 하나로 ‘공교육정상화법’을 지난 3월에 공포하고 4월 9일에는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선행학습금지법’이라 불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입법 예고, 규제 심사, 법제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 2014년 9월 12일 ‘공교육정상화법’ 시행 일정에 맞춰 제정ㆍ공포될 예정이다.


이 시행령의 주요 내용에는 ① 중간ㆍ기말고사, 수행평가 등에서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게 하고, 입학 예정 학생을 대상으로 해당 학교 교과 내용을 미리 수업하거나 출제하여 평가(반배치고사 등)하는 행위도 금지하며, 이를 어기면 학교에 지원되는 예산을 줄이고 ② 대입 논술ㆍ면접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선 내용을 출제하는 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입학 정원을 줄이고 ③ 선행 교육을 실시하거나 선행 문제를 출제한 교사가 징계를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효과가 의심스러운 ‘선행학습금지법’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선행학습금지’를 법을 통해 실행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반교육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억지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법안이 나오자마자, 이 법안은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몰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선행학습을 유발시킨 학원에 대해서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함으로써 학원의 선행 학습을 허용하고 있다. 학원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학원에 대해서는 규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이다.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선 내용을 출제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를 정부는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식 통계로도 연 20조 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새로운 정책을 내 놓았지만 실제로 사교육비는 감소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사교육비가 학부모들에게 부담일 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시행착오로 끝났으며, 이 법 역시 사교육비를 줄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뿐만 아니라 이 제도는 자사고와 특목고와 비교하여 일반고에 불리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한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원하는 과목을 자율적ㆍ탄력적으로 편성할 수 있어 이 법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일반고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반고는 방과후수업을 통해 자사고와 특목고와의 균형을 유지하였지만, 이 법이 방과후수업에서의 선행학습도 금지하기 때문에 일반고와 자사고의 격차는 커질 것이라는 우려는 설득력이 있다. 나아가 이 법은, 교육은 소질과 적성, 능력과 처지에 맞추어 수준별ㆍ맞춤형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 고교 과정에서 대학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한 외국의 제도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교육 주체의 자발성을 침탈하는 규제, ‘선행학습금지법’


그러나 이 법의 문제점이 사교육비를 줄일 것인가는 그렇지 못할 것인가, 교육 현장에서 선행학습을 금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를 출제한 학생ㆍ학교에 대한 징계와 예산 지원 축소, 대입 논술ㆍ면접 등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을 출제한 대학에 대한 입학 정원의 감축과 정부 재정 지원 사업 참여의 금지가 교육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논의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의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존재한다.


정부의 ‘선행학습금지법’의 문제는 지도ㆍ감독, 금지, 심사, 징계 등의 규제로 구성된 정부의 법령이 교육의 주체인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를 미성년자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의 자율성과 이성적 판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가가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제 주체를 지도하고 감독하고 금지하고 심사하고 징계하려는 것이다. 정부 규제의 문제점은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규제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을 자의식과 판단력을 가진 성숙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의 교육적 효과를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선행학습에 몰입하는 잘못된 교육 방법은 방향을 상실한 과도한 교육열의 결과이다. 학생의 수준을 무시한 선행 학습은 이로울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가지 않으면 낙오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초등학생에게 중학교 공부를, 중학생에게 고등학교 공부를 시키는 것은 소모적이며 비교육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 학습에 몰입하는 것은 과도한 교육열이며, 나아가 교육열을 벗어난 무지의 문제이다. 무지는 깨우침의 대상이지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선행학습은 정부가 강제력을 통해 규제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규제한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권력의 주체인 정부가 규제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숙고하는 시민들의 몫은 사라진다. 자신들이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해 숙고하는 시민을 길러내지 못한 사회는 영원히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고 국가가 문제해결자로 상존하지만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정신적인 후진 국가로 남는다.


우리들이 정신적인 후진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 능력이 없는 정부에게 해결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하며, 정부도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무조건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정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시민 사회 내부의 자정 능력을 고무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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