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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행복’,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을 57회, ‘행복’을 20회나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꿈이 ‘국민 행복’에 있음을 만천하에 표명하였다. ‘국민 행복’은 자연스럽게 박근혜 정부의 국정 목표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이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많은 국민들의 희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정치는 현실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이나 ‘국민 행복’은 무엇이고, ‘국민 행복’이 정부의 국정 목표가 될 수는 있는 것일까? 될 수 있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 행복’의 추구: ‘행복한 개개인으로서 국민의 수’를 늘린다는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총량을 늘린다는 것인가?


오랫동안 행복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과 종교의 주제였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 최고선이 바로 행복이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쾌락ㆍ명예ㆍ부의 추구가 아니라 이성의 발휘를 통한 덕의 추구이다. 서양 중세에는 세속적인 행복을 철저하게 부정하여 현세에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적으로 설정하였다. 인간의 욕구를 긍정적으로 인정한 근대 인간관이 출현하면서 행복은 욕구ㆍ쾌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법정 스님은 복잡한 철학적 해석을 떠나 행복을 일상의 기반 위에서 명쾌하게 해석한다.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튼다. 복잡한 생각, 미운 생각, 고운 생각 다 부려 놓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행복은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행복은 요구하고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에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기 때문에, 어떤 기준을 갖고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행복은 주관적인 가치이다.”


법정 스님에 의하면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고 주관적이다. 이런 행복은 개인의 수행이나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지 정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곧 ‘행복’은 정치의 의제는 될 수 없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나선 열정적인 권력자들이 실제로는 국민을 불행으로 몰고 갔다며, ‘국민 행복’이 정치의 의제가 되는 것을 경계한 정치 철학자들도 많다.


그런데 ‘국민 행복’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행복을 느끼는 주체로서 ‘국민’이 존재하는가? ‘국민’은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마치 ‘홍길동’, ‘허생’이 존재하듯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국가의 인적 구성요소로서 개인 하나하나의 집합을 ‘국민’이라고 부를 뿐이다. ‘국민 행복’은 결국 국민을 구성하는 개인 하나 하나의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석한다고 ‘국민 행복’의 문제가 명쾌하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 ‘행복한 개개인으로서 국민의 수’를 늘린다는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총량을 늘린다는 것인가? 설령 둘 중에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계산하여 양으로 표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설사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양을 증가시키기 위해 정부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부가 국민의 행복의 양을 증가시키기 위해 어떤 정책을 시행할 경우, 그 정책이 실제로 행복을 증가시켰는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행복 지수’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측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기 때문에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정부가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산층의 비중이 확대된 것을 ‘국민 행복’의 정도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런 주장들도 행복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의 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는 OECD 34개 국가 가운데 32위이다. 특히 삶의 질과 관련된 19개의 지표 가운데 환경ㆍ생태 유지 가능성과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접촉 빈도 등이 반영된 ‘사회네트워크 안정성 부분’에서는 최하위인 34위를 기록했다. 주관적 건상상태(32위), 필수시설을 갖추지 못한 가구비율(31위), 소수 그룹에 대한 관대성(28위), 국가기관 신뢰도(26위), 고용률(21위), 소득분배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21위) 등도 하위권에 속했다.


이 가운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국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를 시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정책들은 오히려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는 경제 성장과 같이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성장ㆍ고용확대ㆍ경제민주화ㆍ보편적 복지가 함께 갈 수 있다는 주장은 이상주의자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적으로 구현된 경우는 거의 없다.


‘국민 행복’을 위한 노력에의 종교적 몰입과 열정보다 객관적 현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책 시행을 하려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


그렇다고 ‘국민 불행’ 시대에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자 아담 스미스는 “건강할 때, 빚이 없을 때, 양심의 가책이 없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건강, 경제적 안정(생활필수품의 확보), 안정적인 가족 관계와 공동체 소속감, 자존감, 사랑, 여가 시간, 개인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정도, 자연환경 등이 행복의 구성 요소 또는 조건으로 꼽힌다. 이런 요소들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어 하나가 무너지면, 동시에 무너지는 도미노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현대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경제적 안정이다.


행복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정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과제, 곧 국방과 치안을 엄중하게 확보하고 공정한 법의 제정과 집행만 하면 시민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빈곤선’ 아래에 떨어진 시민들이 그 선을 벗어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많아지고, 시민들의 경제적 안정의 기반이 되는 경제 성장을 해칠 뿐이다. 임기가 4년ㆍ5년인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보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주문이긴 하다.


‘행복’에 있어서는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보통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손자 세대’의 운명까지에는 관심을 가진다. 우리는 ‘손자 세대’의 불행을 담보로 현세의 ‘국민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도덕적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 행복’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겠다는 ‘종교적 열정과 몰입’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엄정하고 객관적인 이해와 이를 기초로 정책을 시행하려는 신중함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과 같이 중요한 사안을 ‘정부의 손’에 맡기지 않는 국민 각자의 책임 의식이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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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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