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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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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기본투자원칙 지키며 기금운용 해야


안전성을 무시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이는 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투자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기금운용현황을 보면 현재 전체 운용자산 중 77.9%를 국내에 투자하고 있다. 흔히들 하는 말로 거의 몰빵이다. 넓은 해외시장은 버려두고 비좁아 터진 국내에만 몰두하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는 실물과 금융 모두 전체 세계경제의 2% 정도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국내금융시장이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에 취약하다. 이를 생각하면 현재 국민연금은 위험분산이 아닌 위험집중의 원칙에 따라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면 국민연금까지 흔들리게끔 자산을 배분해 둔 것이다. 극도의 위험을 즐기는 도박성향의 투자자가 아니라면 설명조차 불가능한 부분이다.

수익성도 저버린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국민연금은 아마 억울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주식보다 안전한 채권을 훨씬 많이 갖고 있다고, 그래서 아주 안전성을 중시하며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말은 맞다. 주식과 채권의 조합비율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위험회피도를 반영하는데, 이 비율만 놓고 보면 한국의 국민연금은 전세계 주요 6대 연기금 가운데 가장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2014년 말, 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의 채권 비중은 17%, 캐나다 국민연금은 26%,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37%, 네덜란드 공적연금은 39% 등으로 모두 채권보유비중이 4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일본 공적연금 정도가 예외인데 그 조차도 52%로 우리보다는 낮다. 국민연금의 채권보유비중은 거의 60% 육박하고 있다. 문제는 채권이 주식에 비해 안전한 대신 수익률도 낮다는 기본적인 사실 때문이다. 전체 기금의 포트폴리오에서 채권 비중이 높으면 높을수록 평균적인 수익률은 떨어지게 된다. 당연히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세계 주요 연기금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반시장적 전근대적 기금운용 계획


우스운 일이다. 국내에다 거의 몰빵으로 투자해 안전성을 해쳤으면 수익성이라도 높여야 하는데 이번엔 채권에다 절반이 넘는 기금을 몰아넣어 수익성까지 버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계획을 보면 참 이상한 투자 원칙, 즉 “국민”의 연금이니 정부 빚내는 거 도와주고 국내기업 주가 떠받치는 게 의무인 것처럼 명시되어 있다. 그게 공공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오히려 공공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는 데도 말이다. 나아가 이처럼 이상한 투자원칙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의결 등에서도 종종 반시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기금운용위원회의 2015~2019년 중기자산배분계획에는 여전히 국내에 전체 기금의 70%를 할당하고 그것도 채권 중심으로 하겠다는 목표 아닌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도 별로 바꿀 생각이 없는 거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노벨상 상금은 어디서 오나?


지난달, 스웨덴의 노벨 재단은 생리의학상 분야를 시작으로 여섯 분야에 걸쳐 2015년 노벨상 수상자들을 차례차례 발표했다. 각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상금도 함께 주어진다. 첫수상자를 배출했던 1901년 이후 지금까지 상금액수는 늘기도 하고 줄기도 했는데, 2014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800만 스웨덴 크로네(SEK), 현재 환율로 따지자면 우리 돈 11억 4천만원 정도의 상금이 각 분야별로 주어졌다. 그런데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기부한 돈이 당시 액면가로 3100만 스웨덴 크로네이니, 만약 이 돈의 원금으로 상금을 준다면 이미 바닥이 났을 것이다. 노벨 재단이 하는 여러 가지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더 빨리 그 바닥을 드러내었어야 하는데도 노벨 재단은 여전히 독립적이고 건재하다.

시장원리에 따른 현대적 투자 방식


실제로 1977년까지 노벨 재단의 자산관리는 엉성했다. 1978년 보유한 투자자산의 실질가치는 알프레드 노벨의 최초 기부액에 비해 42%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원금을 까먹은 셈이다. (물론 현대적 의미의 “금융”이 2차 대전 이후의 학문이란 걸 상기해 보면 그리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이 발표된 건 1952년의 일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975년 노벨 재단이 현대적인 기금운용 방식을 받아들인 후 지난 40년간 보유 자산의 명목가치는 1억 7천만 크로네에서 39억 크로네로 2300% 수준에 이르게 되고, 실질가치로 따져도 443% 수준을 달성했다. 상금주고 재단운영하고 기타사업하고, 그러니까 쓸 것 쓰고 남은 자산이 그렇게 불어났다는 것이다. 원금 안 까먹고 투자수익으로 이런 사업들을 다 하고 있으니 노벨 재단은 120년 전 그의 뜻을 아마 영원히 가져갈 수도 있지 않을까.

노벨 재단 16.5% vs. 국민연금 5.2%


작년 (2014년) 한 해 동안 노벨 재단이 전체 운용 기금으로부터의 수익률은 16.5%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5.2%에 그쳤다. 무엇이 이렇게 엄청난 수익률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2014년 말 노벨 재단이 운용하는 기금 포트폴리오 구성을 보면 주식 55%, 채권 12%, 대체자산(부동산과 헷징상품) 33%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각 자산들의 포트폴리오 구성 비율이 우리와 정반대니, 수익률도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우리 국민연금은 국내기업의 주가를 떠받치는 게 공공의 의무라는 믿음 아래 투자하다 보니 국내주식부문에서만 2014년 마이너스 5.5%로 큰 손실을 기록하고 말았다.


수익과 안전 추구가 진짜 공공성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현재 500조원으로 세계 5위의 초대형급이다. 국민연금이 노벨 재단만큼 했더라면 한해 50조원은 더 벌었을 테고, 욕심을 좀 줄여 여타 세계 주요 연기금의 평균 수익률만 따라가도 최소 10조원은 더 불렸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 우리 연금의 구조상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더 많다. 이로 인해 그 규모는 당분간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 5년 후엔 850조원을 넘어서고 2043년에는 2500조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보니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일 때마다 연금 고갈 시기는 수년씩 늦춰지고, 우리의 미래는 더 풍족해지고, 미래 세대의 어깨는 더 가벼워진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기금의 재원은 함께 노후를 대비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속에 국민 한명 한명의 저축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 설립의 뜻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엄청난 규모를 생각하면, 수익과 안전 추구 원칙 이외의 어떠한 주장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진짜 공공성을 되찾는 길이다.

김성훈(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 부연구위원 / s.kim@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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