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세우는 주요 국정과제 중의 하나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 출범 초기에는 ‘소득주도 성장’을 화두로 삼았지만 올해부터는 ‘혁신성장’을 화두로 삼아 규제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1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대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체계 전환을 강조하였다. 대통령은 또한 신산업의 경우 우선은 사업을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도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규제체계 전환을 추진했었다. 김동연 경제부종리는 박근혜 정부 초기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면서 “정부는 현존하는 모든 규제를 원점(zero-base)에서 검토한 뒤, 경제규제 위주로 최대한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신기술ㆍ신시장ㆍ신산업 및 투자저해 규제는 원칙적으로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라고 천명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과 거의 동일한 입장이다. 이렇듯 정부는 바뀌어도 규제혁신의 방향은 같았지만 왜 성공하지 못하였는가.
흔히 규제혁신이 잘 되지 않는 원인으로 공무원 집단의 기득권을 많이 거론한다. 물론 타당한 진단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맞이한 지금에는 이 같은 진단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많은 경제활동은 현재의 개념으로 정형화(定型化)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인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상화폐도 이 같은 범주에 속한다. 현재의 가상화폐 거래는 분명히 투기적 속성을 띠고 있지만 가상화폐의 본질과 그 기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간에도 많은 논쟁이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의 분리 여부, 대안화폐로서의 기능과 범위 등 여러 측면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여러 논쟁들이 어떻게 수렴되느냐에 따라 규율체계도 그 방향을 잡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무부장관이 덜컥 가상화폐 거래를 ‘허가받지 않은 도박’으로 규정하여 거래소를 폐쇄한다는 발언을 하니 당연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변화가 본격화되면 단순히 기득권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규율할 줄을 몰라 우격다짐식으로 과거의 틀을 들이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네거티브, 포지티브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한다 하더라도 예외적 금지조항이 해당 상품과 서비스의 본질적 기능을 저해하는 역할을 한다면 성공적인 네거티브 규제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공무원, 국회의원 등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집단의 의식과 사고방식의 변화가 없다면 무늬만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들이 속출할 수가 있다. 즉 기득권 수호 때문이 아니라 사고(思考)의 관성(慣性)으로 인해 규제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기술·신산업에 대한 규제는 차치하고 지금껏 논란이 되어온 해묵은 규제들의 대부분은 해묵은 사고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행의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은산분리 규제도 현재의 융합시대와 맞지 않다. 하지만 대기업의 사금고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이 이 규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은산분리주의자들이 은산분리 규제의 대표격으로 떠받드는 미국의 은행 및 저축기관 규제기구인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의 Acting Chair를 맡았던 Keith Noreika(2017년 5월~2017년 11월)는 일련의 연설에서 ‘미국의 은산분리 규제는 1930년대의 상황과 특정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며 현재의 소비자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미국의 은산분리는 과거의 상황과 사고에 기초한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라는 것이다. 은산분리 규제의 본산인 미국 규제당국 수장의 주장이니만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생활 및 경제활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현 시대에는 사고의 혁신 없이는 규제혁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규제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집단의 저항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이나 신념이 정책당국자를 지배하고 있다면 성공적인 규제혁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대부분의 덩어리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규제혁신은 곧 사고(思考)혁신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규제혁신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tk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