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고를 보면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많이 등장한다.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것처럼 간단한 작업은 인공지능에게 말로 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은 평범한 우리에게 디지털 낙원을 제공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자리부터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에는 이득보다는 비용이 더 드는 저숙련 일자리와 인공지능으로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아직 어려운 고급 숙련기술직을 제외하고 중간급 기술직이 우선적으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한다. 만약 이런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그 결과는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일자리 소멸, 중산층의 붕괴 등이 현실화될 우려가 커지면서 기존 사회안전망을 중산층 모두에게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 수준과는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의 소득을 지원하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을 많은 사람들이 강조한다. 기본소득제란 쉽게 표현하면, 필자도, 독자 여러분도, 독거노인도, 대통령도, 그리고 대기업 총수도, 중소기업 인턴사원도 모두 국가로부터 동일한 금액을 지원받는 제도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준다니 손해 볼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 많다.
우선 어느 정도의 돈을 주어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지 여부다. 일을 할 수 없어 소득이 전혀 없는 4인 가구를 생각해보자. 대략 1인당 연간 500만 원, 가구 전체로는 연간 2,000만 원을 지원한다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삶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15세 이상 전체 인구는 대략 3,712만 명이다. 1인당 연간 500만 원씩 지원한다면 1년에 대략 186조 원이 필요하다. 2016년 정부 예산 중 보건·복지·고용에 할당된 예산이 약 123조 원이니 이 예산의 약 1.5배가 필요하다. 다른 복지 프로그램을 모두 폐지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치다. 더구나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2030년이면 15~64세 인구 1.7명이 노인과 어린이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복지예산을 마구 늘릴 수는 더욱 없다.
따라서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다음 문제는 한정된 예산 하에서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소득 격차가 축소되고 사회통합이 가능할 것인가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가난한 사람을 정확히 구별하고 소득 수준에 따라 적절한 지원하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안심소득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였다. 안심소득제란 가구원 규모를 감안해서 가구별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준 소득을 정하고 실제 소득이 기준 소득보다 낮을 경우 그 차이의 40%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4인 가구의 기준소득을 5,000만 원이라 정하자. 일을 할 수 없어 소득이 전혀 없다면 기준소득 5,000만 원과 실제 소득 0원의 차이인 5,000만 원의 40%, 즉 2,000만 원을 지원한다. 즉, 가구원 1인당 500만 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다행히 일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 연 소득이 1,000만 원이 되면 기준소득과 실제 소득 차이 4,000만 원의 40%인 1,600만 원을 지원받아 가구소득은 2,600만 원이 되고 1인당 소득은 650만 원이 된다.
일을 할 경우 추가로 얻은 소득의 60%, 위 예에서는 1,000만 원의 60%인 600만 원 만큼의 소득이 더 증가하니 복지시스템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거부하는 사례도 줄어든다. 더 중요한 점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안심소득제를 시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2016년 가계동향조사 자료의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지니계수를 계산하면 0.344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와 소득재분배 시스템을 거치면서 지니계수는 0.298로 하락한다. 여기에 약 25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안심소득제를 시행하게 되면 지니계수는 0.259까지 하락한다. 소득불균등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예산을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1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게 되면 지니계수는 0.294까지만 하락한다. 25조 원을 추가로 투입해도 현재 소득재분배 시스템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실험을 두고 벌써 기본소득제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기본소득제가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핀란드에서 진행 중인 기본소득제 실험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핀란드는 지난 1월부터 매달 560유로(약 70만 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시범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제 실험 대상들 중 일부는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줄었다는 반응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일부 참가자는 기존 복지제도 하에서는 쥐꼬리만 한 급여를 주는 일자리라도 구할 경우에는 실업급여가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기본소득제 하에서는 구직 여부나 취업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지원받기 때문에 작은 일자리라도 주저 없이 택하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우선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실험은 실업자 2,000명에게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기본소득제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소액을 지급하는 일자리는 쳐다볼 필요도 없다. 실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한 파트타임처럼 현재 소액만을 지급하는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일자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기본소득제가 그만큼은 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제 하에서는 파트타임과 같이 개인적인 사유로 간단한 일을 찾아 파트타임으로 일 할 유인도 없다. 노동공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위 사례를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현재 우리 경제의 상황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제 시행은 재정 여건 상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가난한 사람을 정확히 구별하고 그들에게 소득 수준을 감안하여 지원을 하는 것이 주어진 예산 하에서 소득불균등을 완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국가비전연구실장 / econbyu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