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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고, 누가 ‘남’인가


누가 ‘우리’고 누가 ‘남’인가? 얼핏 들으면 정치나 외교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말처럼 들리지만 한때 치열했던 ‘우리 기업 논쟁’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라이시(R. B. Reich)는 Harvard Business Review에 “Who is Us?”(1990), “Who is Them?”(1991)이라는 논문을 기고하였다.


논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미국 기업으로서 해외에 진출하여 경영활동을 하는 미국 다국적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미국 기업이냐 현지 기업이냐, 거꾸로 외국 기업으로서 미국에 투자하여 미국에서 사업하는 외국 다국적기업의 자회사는 미국의 입장에서 외국 기업이냐 미국 기업이냐? 이 점을 둘러싸고 라이시 장관과 당시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타이슨(L. D. Tyson) 의장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를 ‘우리 기업 논쟁’이라고 부른다.


세계화 시대의 ‘우리 기업 논쟁’


이 해묵은 이야기를 왜 지금에 와서 하는 것인가? 필자는 얼마 전 어느 포럼에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외자계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에 대해 정책지원의 범위를 확대할 것인가”의 토론에 참가하였다. 1990년대 초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글로벌화의 물결이 안방에까지 불어닥친 작금의 시점이기에 제도와 행동은 물론이고 관행과 의식의 측면에서도 세계화가 진전되었을 터인데 의외로 외국계 투자기업에 대해 왜 정책적 지원을 하느냐는 반대의견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이나 유럽에 진출하여 활발한 해외사업을 하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냉철히 생각해 보면 우리 기업의 해외 자회사는 진출한 국가에 세금을 내고 현지인을 고용하며 그 나라 GDP와 무역수지에 공헌을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다국적기업의 한국 자회사는 우리나라 정부에 세금을 내고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을 취업시키며 그 자회사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우리나라 GDP로, 그 자회사가 해외에 판매하는 수출액은 우리나라 무역수지로 집계된다.


이런 점에서 라이시 장관은 미국 기업으로서 해외에 나가 있는 자회사보다 외국 기업으로서 미국에 들어와 있는 자회사가 더 미국에 도움이 되고 미국의 입장에서 ‘우리 기업’에 속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한국 자회사에 대해 국내 기업과 동일한 자격으로 R&D 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국내 기업에 돌아갈 지원 혜택을 외국 기업에 할당한다고 반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활약하고 현지로부터 환영이나 우대를 받는 데 대해서는 긍지를 느끼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기업에 대해 배타적인 의식을 갖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 잣대(ambivalence)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세계화 내지 해외 진출과 관련하여 국가 또는 기업 레벨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쉽다는 점이 내재되어 있다.


기업의 세계화는 무국적적(border-less)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국가의 세계화는 국경과 주권의 개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border-full) 전개되어야 한다. 기업의 세계화는 필수적인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대규모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국내 산업은 공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찍이 버논(R. Vernon)은 Sovereignty at Bay(1971)에서 다국적기업의 세계적 활동이 국가 주권을 위협하게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외투기업 차별대우는 안 되지만 국내 기업 역차별도 곤란


어려운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나라 대기업 중 상당수가 국내에서 더 이상 사업을 확대하거나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고용이 확대될 개연성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외국인투자기업이다. 외투기업이야말로 우리 기업일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많은 도움을 준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외국인투자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국내 기업이 외면한 지역에 해외 기업이나 기관을 유치하여 지자체가 활성화된 몇몇 사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외투기업이 R&D를 통하여 혁신을 하고 경쟁력을 높이도록 지원하고 유도할 의무는 그 외투기업의 소속 국가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다. 물론 외투기업에 대한 지원 수준과 조건은 국내 기업과 동일해야 하고, 이들 기업에 특혜나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외투기업을 차별해서도 안 되지만 국내 기업을 역차별한다면 곤란하다.


말로는 진정한 글로벌화, 의식의 선진화를 외치지만 막상 현실이 되면 외투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외투기업이 거둔 성과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등 국내 기업과 외투기업을 구분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관해서는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태풍이나 지진 피해가 우리나라를 비켜갔다고 해서 다행이라는 말이나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김용열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yykim@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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