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한국의 20대 국회가 특권 버리기에 나선다고 얘기가 한창이다. 그렇다면 1995년 출범되어 20년이 넘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원래의 지방자치 도입취지는 행정 공급자에서 행정 수요자 관점의 행정 서비스 충족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방자치와 연관된 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의 역량 및 기여도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 재정자립 제고를 위한 노력은커녕, 오히려 국회 특권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에게도 더 많은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형편이다.
일례로 지난 6월 22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 시·도의 의장단협의회 임시회에서는 ‘지방의원 의정활동비 현실화 건의안’을 담은 안건을 긴급 상정해 의결하여,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방자치 출범 당시 ‘무보수 명예직’이었다가 10년만인 2006년부터 유급제로 고액 연봉 대열에 합류한 지방의회가 국회의원에 비해 세비나 연봉이 적다는 이유로 스스로 그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월 150만원인 의정활동비(일반 활동비)를 385만원으로 올려 달라는 내용이다. 인상률은 156%나 된다. 이들은 인상 근거로 물가가 2003년 이후 연평균 2.47% 상승했는데 세비는 13년간 동결됐다는 것을 들었다.
'13년 동결’을 강조했지만 사실 의원들은 그동안 의정활동비가 적다며 월정수당을 계속 인상해 왔다. 서울시의원의 경우 2015년에 1명당 의정활동비 연 1800만원, 월정수당 연 4450만원 등으로 총 6250만원을 받는다. 4년째 동결된 금액인데도 그렇다. 이는 서울시 4급 공무원(과장급)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9급 공무원이 4급까지 올라오려면 족히 25년은 더 걸린다.
그 뿐인가. 각 지방 단체장들은 국회의원들처럼 임기 내에 자신들의 업적을 쌓기 위해 전시적 사업을 추진하여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지방공무원 및 지역주민을 동원하는 등의 일로 지탄을 받기 일쑤다. 국회와 지방자치 단체가 이중으로 지역구에서 업적 쌓기 전시 경쟁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연히 지방의회의 정치 비효율로 인한 세금 낭비는 커져간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26일, 더민주당 소속 시·도지사 9명이 지방분권형 개헌을 제시하여, 민생·치안을 지방정부에 이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제까지의 자치권으로도 주민들 삶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민폐를 끼쳐온 바가 큰데, 이처럼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생과 치안까지 이양된다면 지자체별로 얼마나 많은 세금낭비, 알음알음의 이권남용과 비효율이 난무할 것인가.
우리의 지방자치에 대한 염려와 실망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주지사 부인의 식당 아르바이트 뉴스를 접하면서, 이제 우리도 한국의 지방자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라 생각한다.
5년째 미국의 메인 주지사로 일하고 있는 르페이지 주지사의 부인은 남편의 박봉때문에 부수입을 얻고자 식당 종업원으로 취업해 화제에 올랐다. 부인은 "돈 때문에 시작했다"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손님이 준 팁 모아 SUV 사겠다"는 바램도 당당하게 밝혔다.
지방자치의 선진국인 미국 주지사들의 처우를 살펴보자면, 미국 연방에서 각 주(州)를 이끄는 주지사는 선출직으로 정치·사회적으로 높은 위상을 앞세워 자치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각 주의 재정 상황에 따라, 그 연봉이 크게 다르다. 미국의 2015년 1인당 국민소득은 46,400불이고, 주지사의 평균 연봉은 약 13만달러(1억5천250만원)로 국민 평균소득의 약 3배이지만, 미국 50개 주 중에서 면적 순위 39번째인 메인 주의 주지사의 경우, 주지사들 평균연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자 주지사 중 가장 적은 7만 달러(8천211만원)를 받는다.
둘째, 재산이 많은 주지사들은 자기주의 재정상황과 관계없이 연봉은 전혀 받지 않고 봉사를 하고 있다. 억만장자 부자인 브루스 라우너 일리노이 주지사와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는 각각 16만~17만 달러 정도의 연봉 중 단 1달러만 상징적으로 가져간다. 그런가하면, 피부과 전문의 출신 로버트 벤틀리 앨라배마 주지사는 주 실업률이 자신이 공약한 5.2% 밑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약 13만 달러의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앨라배마 주의 지난해 4월 현재 실업률은 5.8%다.
주지사의 급여를 포함한 주 예산의 모든 지출은 그 주의 재정자립 기반 위에서 결정된다. 미국 연방 정부의 주 정부 지원금은 24.7%에 불과하여,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75%이다. 주 예산에서 지급되는 주지사의 연봉도 당연히 그 주의 재정자립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신들의 연봉을 올려달라고 정부에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어떤 상황인가? 2016년 기준, 17개 광역시 자립도는 서울이 84.73%, 그 다음이 울산 72.3%이고, 부산, 경기는 60-70%, 대구, 광주, 대전, 세종이 50-60%, 경남 43.5%, 충북 충남 경북 40% 미만, 강원, 전남, 전북은 30% 미만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미국의 평균 재정자립도 75%에 한참 못 미치고 있지만, 재정자립도 개선 노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의 연봉 인상만큼은 당당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메인 주지사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19년 이후, 다음에 올 새로운 주지사 연봉인상을 추진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의 연봉은 재정자립도와 무관하게 법적으로 사전에 정해져 있는 고정급 연봉제이다, 서울시장은 장관급, 시도지사는 차관급 연봉을 받고, 시장, 군수, 구청장의 경우는 인구수로 연봉이 결정된다.
이처럼 성과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권리만큼은 언제나 법으로 보장받다 보니 지방자치 20년 동안, 지방자치의 질을 향상시키고, 재정자립도를 높여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 부담을 줄여서 지역주민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방자치의 원래 목적에 충실하려는 실질적 내용들은 등한시한 채,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회는 오히려 한국 정치 좌파 또는 우파의 이념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장소로 전락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지방의 재정 자립도 향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지역 내 기업이 노사분규로 경쟁력이 하락되고, 관련 주민들의 생계가 타격을 받아도, 지방자치단체나 의회가 그 해결을 위해 의미있는 노력을 한 선 례를 보지 못했다. 법인세 인하 인센티브를 통한 기업 유치노력에도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는지 회의적이다. 흔히 지방의회가 국민에게 민폐를 끼치는 ‘세금 먹는 하마’로 인식되고, 지방의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복지, 지역사회개발 등 주민의 이해와 관계있는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며, 지역사회와 주민에게 봉사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회는 의결권과 행정감사, 통제권, 청원처리권 등을 수행하면서 지방자치 단체장들에 대한 견제와 균형도 철저히 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이러한 일들에 적합한 역량, 통찰력, 책임감을 갖춘 인물을 육성하고 선출하지 않는 한, 지방자치는 소모적인 이데올리기의 투쟁 장소나 세금낭비 조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종욱 (서울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cgrh@sw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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