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놓았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 상황을 챙기고 있다. 청년실업, 노인빈곤, 저출산, 빈부격차, 저성장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일자리와 연계하여 한꺼번에 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복지혜택 강화 등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촉진하여 민간부문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 정책의 기본전략이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연평균 35.6조원이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정개혁을 통해 22.4조원, 세입개혁을 통해 13.2조원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필요재원은 증세를 통해 조달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퍼주기식 복지정책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통해 복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은 평가받을 만하다. 더욱이 일자리 창출이 4차 산업이 가져올 노동시장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라는 현 정부의 주장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이 케인즈의 국가개입정책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소득불평등 해소와 소비 진작을 위한 누진과세 강화, 민간투자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공공투자 확대, 이자율 하락을 위한 통화정책이 완전고용을 위한 케인즈가 제시한 핵심 국가정책이다.
우리는 1930년대 대공황이 케인즈 이론에 입각한 뉴딜정책으로 극복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다. 뉴딜정책은 대공황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단기간에 끝날 수 있었던 불경기를 대공황으로 몰고 가고 12년간이나 지속되게 만든 것이 뉴딜정책이다. 당시 루즈벨트 정부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과 법인세와 상속세율을 인상하고, 기업의 배당에 대한 5% 원천과세를 도입했다. 세계대전 마지막 해에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94%까지 올라 최고조에 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제품의 가격과 판매조건을 규제하는 국가산업진흥법(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이법의 취지는 임금을 인상하여 가계의 소득을 높이고 재화의 가격을 낮춰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기업의 생산비용은 치솟고, 실업자 수는 1,300만 명에 달했다. 특히 최저임금법으로 남부지역에서는 50만 명에 달하는 흑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증세로 인해 경제 활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공공투자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루즈벨트는 믿었다. 그러나 증세로 걷어 들인 세금은 비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 갔다. 필요하지도 않은 다리를 놓고 건물을 짓는데 사용했다. 당시 건설한 다리가 7만 7000개에 달하고 공공건물은 11만 6000개에 달했다. 그러나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전쟁이 끝나면서 동맹국과의 무역이 재개되고 민간투자가 살아나면서 시작되었다. 대공황을 종식시킨 것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아닌 민간투자에 관대하고 자유무역정책을 지지했던 트루만 대통령의 경제정책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케인즈 국가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프라자 합의 이후 일본 정부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1970년대에도 두 차례의 엔고 불황을 겪었다. 그때 마다 수출기업들은 사업다각화, 연구개발투자 강화, 생산거점의 해외이전, 임시직 고용을 통한 인건비 절약, 협력업체에 대한 원가절감 목표 부여 등의 자구노력을 통해 엔고불황을 단기간에 극복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 이후에 나타난 엔고불황 때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대표적인 케인즈 학자인 크루그먼(Krugman) 교수는 일본이 유동성함정에 빠져있어 이자율 인하와 양적완화 만으로 경기를 살릴 수 없다고 진단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크루그먼 교수의 조언에 따라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약 20번에 걸친 경기부양정책이 시행되었는데, 투입된 재정만 216조 엔을 상회하였다. 재정의 대부분이 공공투자와 공공일자리 창출 등 비효율적인 분야에 투입되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골에 도로를 건설하고 국민들에게 상품권을 공짜로 나눠주고 쓰라고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방만한 재정확대 정책이 인기영합적인 복지정책과 맞물리면서 일본의 국가채무는 현재 세계 최고수준에 달하고 있고 경기침체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우리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하루 빨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커지고 정부개입이 늘어날수록 정부의 좋은 의도와 달리 국민의 삶의 질은 나빠지기 십상이다. 자원은 시장원리에 따라 가장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 갈 때 새로운 부가 창출되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기업은 가장 비효율적인 곳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 공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0.8로 1보다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100원을 빌려 사업을 하면 20원의 적자가 쌓인다는 의미이다. 전 산업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2.8에 달하고 대기업 제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6.8임 점을 고려하면 공기업은 효율성이 턱 없이 낮은 곳이다. 현 정부는 생산적인 곳에서 세금을 걷어 비생산적인 곳에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과거 대공황 때 미국이 그랬고,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이는 일본이 그랬듯이 우리도 같은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듯하다.
소비가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부턴가 저축을 터부시하고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로 가고 있다.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를 자손에게 물려주면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경기침체가 있을 때 마다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를 하려고 해도 쓸 돈이 없고 빚을 낼 수도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물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소비가 어떤 형태로든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소비를 뒷받침하는 것은 생산과정에 기여하고 받은 소득이고 저축인 것이다. 경기변동을 예측하고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행위이다. 케인즈가 말했듯이 저축은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로부터 자원을 유출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저축은 기업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자원의 창고이고 미래의 소비의 원천인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케인즈의 뉴딜정책의 역사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때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 glcho@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