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협력업체의 동반성장에 관한 소고: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최근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가 이슈가 되는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커서 사회적 불공정성의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따라서 대다수의 젊은 취업 희망자가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중소기업을 기피하여 노동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가 커서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비화된다는 점이다.

임금 격차로 대표되는 이러한 차이의 공정성에 대한 불인정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분노는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동반성장,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대기업에 대한 부메랑으로서 돌아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본고에서는 같은 공급사슬 상에서 경쟁관계이자 협력관계에 놓여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 이슈들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거래 관행: 계열화

우리나라의 완제품 조립 대기업과 부품 공급업체의 관계는 필요한 때마다 그 때 그때 시장에서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경쟁을 통해서 거래를 하는 시장구매 유형보다는 발전단계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을 모방해서 장기공급계약관계 유형인 계열화가 대세를 이루어 왔다.

계열화는 시장거래(buy)와 자체제작(make)을 절충한 하이브리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 형태의 성패는 어떻게 양 방식들의 이점을 각각 살려내고 단점들을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즉, 어떻게 시장(market)의 강점인 경쟁의 효율성을 살리면서, 조직(hierarchy)이 갖는 장점인 거래비용 감소와 시너지를 추구하고, 그 단점인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느냐에 그 성과가 달려있다.

계열화 방식에서의 가장 큰 불공정성은 한 번 장기계약관계에 포함된 업체는 신규진입 희망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쌓음으로써 기득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적 부품공급자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 폐해가 간과되는 반면에, 눈에 띄는 현존하는 부품업체들은 약자처럼 보이므로 피해자라는 사회적 인식은 기본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보다 중시하는 심리적 착각에 기인하는 오류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부가가치 격차 원인; 초기 역량에 따른 확대 재생산

동일한 가치사슬 상에 놓여있는 조립업체인 대기업과 부품공급자인 중소기업 간의 임금과 수익성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부가가치의 배분 비율에서 누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할 것인가는 협상력의 강약에 달려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조립업체들은 부품 공급자에 비하여 협상력이 큰 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예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의 조립업체들은 부품공급자에 비하여 협상력이 강한가? 조립업체는 더 나은 또는 동일한 조건의 대안적 부품공급업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데 비하여, 부품공급업체는 대안적 수요처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협상력의 본질이다.

기본적으로 협상력의 원천은 경쟁자(동일 제품/부품 공급업자들: 조립업체의 경우는 타 조립업체, 부품 공급사의 경우는 타 부품공급사)에 대한 경쟁우위(품질, 원가, 생산성, 공급능력 및 납기준수 능력)와 그 경쟁우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신만이 갖는 차별적 역량의 보유 여부에 달려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외국의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는 조립업체가 먼저 생겨났고, 그 이후에 국산화의 진전과 함께 부품생산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조립업체는 기술 축적의 기간이 길었던데 비하여, 부품업체는 역사가 짧고 기술 축적도도 낮았다. 즉, 차별적 역량과 경쟁우위의 차이에서 오는 기회비용의 차이가 협상력과 부가가치 배분의 차이를 가져 온 것이다.

둘째, 조립제품들은 여러 기술들이 융복합되고 고도화된 시스템 기술인 경우가 많아서 잠재 진입자가 쉽게 참여하기 힘든 반면에, 어떤 부품들은 형태의 단순성으로 인하여 기술적 차별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 부품들은 부가가치가 낮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싼 후발국 진입자에 의하여 쉽게 대체되기도 쉽다. 즉, 가격 인상 등 유리한 협상조건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보다 경쟁력 있는 경쟁자에 의하여 밀려나는 퇴출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 부품들에 대해서는 기존 부품 생산업체들도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생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셋째 원인으로는 조립업체는 유리한 부가가치 배분을 이용하여 우수한 인재의 확보, R&D 투자, 기술 축적이란 선순환이란 사이클을 돌릴 수 있었고 부가가치 배분이 불리했던 부품업체는 인재난, 낮은 R&D 투자, 기술열위란 악순환 사이클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즉, 초기 역량의 격차가 확대 재생산 된 것이다.

거래관행의 불공정성에 대한 고찰과 제언; 조립업체와 부품공급업체들은 기본적으로 동반성장의 길을 걸어와

부가가치 배분 격차의 핵심 원인은 대기업의 악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역량에 따른 보상이라는 시장에서의 자원배분 과정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많은 조립업체들도 부품업체에 비해서는 높은 협상력을 지녔었지만 그들도 조립업체들 간의 경쟁에서 낙오될 때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그들에 계열화된 부품업체들도 동반 퇴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지금 성장한 부품업체들의 성공의 주요 원인은 조립업체의 성공에 기인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즉, 조립업체와 부품공급업체들은 기본적으로 동반성장의 길을 걸어왔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계열화 구매 체제에서 제품의 경쟁력은 조립업체와 부품업체의 종합 시스템 경쟁력이다. 품질과 원가의 상당부분은 부품 및 소재 업체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부품업체의 약한 경쟁력은 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즉, 기본적으로는 경쟁력 강화란 가치를 공유하는 동반성장이 서로에게 유익한 구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몇 가지 관련 이슈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1년 단위로 성과평가를 받아야 하는 수요처의 구매담당자는 장기적 동반성장보다는 단기업적을 중시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구매담당자이든 전문경영자이든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지배주주가 주도적으로 적절한 장단기 평가지표를 균형 있게 개발하여 대리인들의 성과평가에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거래 계약은 당사자가 원해서 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는 공정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협상력이 크게 차이 나는 경우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공정한 계약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회적 관심사가 매년 납품 가격이 인하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완제품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납품단가는 계속 인하되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자가 끊임없이 생산성 혁신을 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적 가격 인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부품공급업체는 생산경험 축적과 대량생산에 따른 생산성향상을 통하여 납품가격 인하를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유사부품을 생산하는 다른 경쟁자보다 빠르게 생산성을 올리고 원가절감을 이루어내면 이윤이 많아지지만, 뒤진다면 수익성이 악화되고 심지어는 적자가 나서 생존이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즉, 매년 계속되는 가격 인하는 악의적 행동으로써 대기업인 갑의 횡포로 보이기 쉽지만 전문성이 없는 제 3자가 개입하여 가격조정을 꿰한다면 공멸이나, 부품 해외 소싱으로 인한 국내 부품업체 도산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시장에 대한 선의의 간섭이 시장의 보복으로 이어져서 결과적으로 대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부품공급업체의 타기업과의 거래 금지 관행이다. 한국적 협력관계에서는 조립업체가 단순한 공급계약을 넘어서서 기술이나 품질 지도를 통한 협력업체 육성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부품업체를 경쟁우위가 있는 기업으로 키워놓았는데 경쟁기업과 거래를 한다면 경쟁우위의 이점이 사라져 버리고, 따라서 내 자원을 투입하여 육성을 해야 할 동기를 못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쟁기업과의 거래금지 관행은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더 큰 사회적 가치인 타기업의 자유를 속박하는 행동에 해당한다. 조립업체는 꼭 필요하다면 자본참여를 통해서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내부제작(make)으로 가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넷째, 몰아주기의 이슈이다. 기업이 어떠한 업무를 조직 내에서 수행할 것인가, 분사해서 아웃소싱을 통해서 할 것인가는 전형적인 자작(make) 또는 구매(buy) 의사결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모든 다른 기업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와 부딪치기 때문에 미묘한 부분이다. 몰아주기 규제에 따라서 일부 기업들이 분사된 기업을 다시 통합하는 것은 규제의 해악이다.

일부 기업은 계열사와의 거래를 지배주주나 후계자의 지분이 높은 기업에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도록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편법 증여나 부당 이익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것은 탈세는 물론 지배주주가 기존 주주의 몫을 가로채는 한국적 지배구조의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몰아주기 규제는 기업의 자유로운 전략적 의사결정을 해칠 수 있는 반면에 기회 균등이란 사회적 가치를 해칠 수도 있다. 또 이것을 이용한 편법 증여나 부당 이익 편취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획일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폐해는 막되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차이가 큰 임금의 이슈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정의에도 해당된다. 관리직과 엔지니어에 대한 노동시장은 기본적으로 유연한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 공급자가 역량에 기반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으며, 기업도 더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다. 또한 38선, 45정, 56도란 말로 풍자되듯이 입사 후에도 그들은 자신의 몸값을 못하면 기업을 떠나거나 해고되므로 기본적으로 유연한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현장노동자 시장은 매우 경직적이고 따라서 효율적이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일부 고숙련 직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현장은 미숙련 작업자에 의하여 운영되므로 기업 간에 현장 노동의 질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임금에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3차 협력업체 수준의 현장 노동자 임금수준에서는 초과이윤이 거의 없어서 이직률이 높은 반면에, 조립업체의 현장 노동자의 임금은 매우 높고 따라서 이직률도 거의 영에 가깝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노동자는 보호받을 노조가 없거나 약하고, 대기업 노동자는 지나치게 과보호되는 것은 매우 정의롭지 못하다. 심지어는 경영난으로 해고되어도 대기업 노동자는 사회적 관심을 받는다. 그들이 가져가는 초과이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형태로 중소기업 노동자가 가져가야 할 몫, 가격 인하 형태로 소비자가 가져가야 할 몫, 기업 확장에 따른 미래 구직자가 가져가야 할 몫, 주주가 가져가야 할 몫을 가로채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불공정은 경직적인 고용제도와 대기업에 있어서 노사 간의 힘의 불균형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므로 그에 대한 개선은 정부와 정치권 및 기업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정규석 (강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kschung@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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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칼럼_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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