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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20주년과 우리의 각오


올해 10월 3일은 독일이 통일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날 장벽 위에서나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광장에서 서로를 껴안고 기뻐하는 동서독 주민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칠 무렵이었던 필자는 딸의 유치원 행사를 마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촛불행진을 하고 있었다. 거리는 조용하고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여인의 눈썹 같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미풍은 얼굴을 스치면서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조금은 써늘했지만 그다지 춥지 않았던 그 밤을 즐기던 중 누군가의 입에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는 말이 나왔고, 뒷줄에 있던 나에게까지 조용히 전해졌다. 어느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서독주민들은 차분하면서도 상기된 표정으로 그렇게 역사적인 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분단의 아픔이 남아 있는 한 독일통일은 우리에게 언제나 살아 있는 생생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최근 북한 내부의 사정이 심상치 않기에 독일 통일 20주년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도 통일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통일은 결코 단계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이다. 책상 위에 그려진 대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누가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상대가 있는 데 말이다. 통일은 한쪽 내부의 고름이 곪아터질 정도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스스로 주민들의 몸으로 보여줄 때 조그마한 사건과 결부되어 일어난다. 1980년대 후반 동독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였다. 그들의 체제에 대한 마지막 저항은 동독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던 그해 초부터 적지 않은 주민들이 동독 탈출을 시도했으며,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면서 대량 탈주가 시작되었다. 동독 정부의 체제 결속을 위한 어떤 조치도 의미가 없었으며, 동독의 마지막 정권이 보여준 정책들은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한 순간의 실수라고 하는 동독주민에 대한 베를린 통행의 완전한 허락이 돌이킬 수 없는 통일의 길로 가게 했다.


지금의 남북한 분위기는 독일이 통일되던 그 당시의 동서독 모습과 흡사하다. 북한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어설픈 화폐개혁의 실패는 그렇지 않아도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북한주민들을 더욱 궁핍으로 내몰았다. 북한주민들의 의식은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제 결속을 위한 북한 당국의 수법은 예전과 다를 바 없으니 주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음을 무릅쓰고 중국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 수가 2만 명에 이른다.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중국이나 태국 등지로 떠도는 북한인의 수를 합치면 탈북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북한주민들의 불만과 그들의 탈주, 그리고 북한 당국의 정책 혼선, 이것이 오늘의 북한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 통일을 위한 여건은 독일이 통일되던 당시만큼 성숙된 것은 아니다. 동맹국인 소련의 냉담, 주변국의 국경 개방, 동독 내부인 라이프치히에서의 촛불 시위와 같은 사건들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통일의 기름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여기에 불을 붙이는 점화장치가 될지 긴장된다.

최근 열린 어느 국제세미나에서 “북한의 붕괴가 우리를 향해 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사가 나왔다. 통일 후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어마어마한 액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 후 독일 연방정부는 동독지역 재건과 주민들의 생활수준 제고를 위해 그동안 1,30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다. 앞으로도 2019년까지 매년 55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이 추가로 지원될 계획이라고 하니 총 지원액이 2,000조 원이 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통일의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온전한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또 다시 외세의 힘에 의존해 한반도가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겠는가?


필자가 통일 지상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의 그 날을 대비해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잡아야 하며 통일의 원칙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통일 후의 전략을 면밀히 준비하면서 우리의 국력을 지금보다 월등히 끌어올려야 한다. 무엇보다 통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유 시장경제 질서에 어떤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 자유 시장경제야말로 우리에게 남북한의 현격한 국력 차이를 가져오게 하였고 그것이 북한주민의 체제 불만으로 이어지게 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유 시장경제의 원칙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순간 통일의 꿈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자유 시장경제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통일의 든든한 반석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우리의 경제력을 신장시켜 통일 후의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감당하게 해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국력신장을 통해 주변 강대국을 설득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와 함께 통일 후의 전략을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그 전략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다. 독일이 동독주민의 생활수준을 서독의 70%로 끌어올리는 데 20년이 걸렸다. 우리는 그보다 낮은 40~60%를 정책 목표로 세울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남북한 통행의 일부 제한, 북한주민 설득 등은 피할 수 없다. 지도자의 정치력 없이는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무엇보다 통일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남한주민을 위해서도 발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통일을 향한 우리의 차분한 마음가짐이다. 통일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도 안 되며, 1인당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을 세면서 통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져서도 안 된다. 통일이 온다면,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역사적인 그 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서독주민들의 차분하면서도 상기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배진영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 econbjy@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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