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하여 미국이 중국을 포함한 수입산 철강,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이유로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면서 촉발된 미국-중국 간 무역전쟁이 서로 추가 관세 부과를 주고받는 치킨게임식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격화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과 중국은 추가적으로 각각 2000억 달러와 600억 달러 규모에 추가 관세(10%, 5-10%)를 부과하였으며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만족스런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사실상 중국의 대미 수출 전체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미중 무역전쟁의 격화 속에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더불어 장기화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가 강하게 우려되고 있는데, 보호무역주의의 전 세계적 확산은 결국 한국과 같이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수출 주도형 소국 개방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불가피하다. 이에 각국은 수출시장 확보를 위한 타개책 마련에 부심중인데 이중 자유무역을 향한 최근 일본의 행보가 주목된다. 일본은 미국의 탈퇴로 좌초 위기에 놓였던 TPP를 부활시켜 CPTPP 타결을 주도하였고, EU와의 경제동반자협정(EPA)도 마무리 지어 내년 초 발효 예정임은 물론, RCEP에도 참여하여 조기타결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하여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일본의 이러한 행보는 한편으로는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 저지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전반적으로 수출 경합도가 매우 높은 한국 기업들에게는 결국 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본 제품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더욱이 최근의 메가-FTA를 일본, 중국 등 한국의 주요 수출 경쟁국들이 앞 다투어 주도하면서 이들 경쟁국들을 중심으로 환태평양지역의 산업 및 무역구조 등 전체적인 판이 짜여 지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게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지난 6월 방한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무역전쟁 확산과 관련하여 큰 내수 시장을 가진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에게는 수출입 감소에 있어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의 경우에는 큰 파장이 우려된다며 유럽연합처럼 아시아 내 연대 및 무역 체제 구축이 필요함을 제언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최근 한경연 연구보고서(“RCEP이 한국 거시경제 안정성에 미치는 효과: 미중 무역전쟁 완충효과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RCEP과 같은 대규모 메가-FTA 참여가 1차적으로 긍정적인 거시경제적 파급효과를 야기함은 물론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산업 및 무역구조를 개선하여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대외 무역환경 악화 속에서 완충작용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자유무역 지대를 확대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향후 대외 무역환경 악화에도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자유무역 협정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제거를 주요 목표로 하던 과거와 달리 투자와 서비스, 기술이전, 인적자원 이동, 글로벌 가치사슬(GVC) 하에서의 분업 강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 등 전방위적인 경제교류/협력 및 경제 활성화 정책을 포괄한다. 특히 여러 국가가 대규모로 동시에 참여하는 메가-FTA에 있어서는 그 전체적인 판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개별 국가의 산업 경쟁력이 크게 좌지우지 될 수 있다. 한국은 그간 양자간 FTA에 주력하여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왔지만 큰 판의 메가-FTA에 있어서는 다른 국가들이 주도하는 메가-FTA에 참여할지 안할지 만을 고민하는 등 소극적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물론 다자간 협상이라는 메가-FTA의 특성상 경제규모가 큰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주도력을 가지기 쉬운 부분이 있지만 한국의 중장기적 지속성장 전략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외교/통상 협상력을 총 동원하여 메가-FTA 시대를 주도해 나가야 할 때이다.
정재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jung@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