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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규제와 벨리 포지의 교훈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의 모든 부서가 물가잡기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공정위의 업무는 무려 40~50년 전으로 후퇴하여 마치 1960~197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과 경제력 집중의 규제기관으로 재정립하기 전까지는 물가단속이 주된 기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의 변신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지식경제부는 물가규제에 한 걸음 더 나가고 있다. 산업계를 지원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본연의 업무는 망각한 채 회계사인 장관이 원가검증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가규제가 지속적으로 성공한 사례 찾기 힘들어


물가를 규제하고 원가를 검증해서 물가가 안정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경제의 기본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삼척동자도 그러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특히 물가규제가 만연했던 우리나라의 과거 사례를 검증해 보면 물가규제의 허구는 너무나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대통령이 단속하라고 지시하면 각 부처는 호들갑을 떨며 산업현장에서 기업들의 고삐를 죄고, 몇몇 품목의 물가는 일시적으로 내려가는 현상을 보인다. 그러다 몇 달 후면 다시 원상 복귀하는 게 물가의 속성 아니었던가.


차라리 원래 수준으로라도 되돌아오면 그것은 상당히 효과를 거둔 경우에 해당된다. 규제를 받는 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하거나 안정되어 보이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면 계단식으로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공공요금이 그렇고, 규제대상인 생필품이 대부분 계단식 물가상승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규제의 칼날을 피해 아예 새로운 품목을 개발하는 경우도 많다. 자장면을 규제하니 이번엔 간자장이나 삼선자장을 만들고, 표준화된 품목에 여러 옵션을 붙여서 가격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나타난다. 따라서 세상 어디에서도 물가규제가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개선시키는 데 기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에는 물가규제로 참담한 피해를 겪었던 전쟁의 사례까지 소개하고 있다. 1777년 겨울 미국 독립혁명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펜실베이니아주 벨리 포지(Valley Forge)에서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당시 그의 주적(主敵)은 영국군과 헤시안 용병이었지만, 혹독한 추위와 극심한 식량부족이 더욱 더 버거운 복병이었다. 워싱턴의 군대는 추위 속에 식량부족으로 거의 아사상태에 빠졌고, 이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 군대를 위한 물가통제법이 참패 초래


그런데 이 과정에서 워싱턴 군대를 처참하게 무력화시킨 또 다른 적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군을 위해 제정한 물가통제법이었다. 현지에 주둔해 있는 워싱턴의 주력부대를 돕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의회는 식량과 군수물자의 가격을 통제하는 법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입법 의도는 누가 봐도 너무나 정당했다. 식량과 의류가격 등을 통제하여 군비부담을 줄이고 충분한 물자를 확보하여 아군의 전투력을 향상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입법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수입재와 통제받지 않은 물자의 가격은 폭등했고, 정부의 규제가격에 불만을 품은 농부들은 식량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금을 받거나 더 비싼 가격으로 적군에게 팔아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 군대가 아무리 강한다고 한들 어떻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겠는가? 수많은 아사자(餓死者)와 함께 워싱턴 부대는 참혹한 겨울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공포의 적, 그것은 바로 주의회가 제정한 가격통제법이었다. 이 전투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은 미국은 1778년 당시 13개 주의 연합의회였던 대륙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게 된다. “재화에 대한 가격통제는 유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극도로 악화시키므로 다른 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령을 제정하지 말기를 권고한다.”


경제 현상은 결코 법이나 명령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전시에서도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경제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만약 경제가 법이나 명령으로 움직이는 주체였다면 왜 사회주의가 실패하고, 북한이 저렇게 되었겠는가. 시장은 결코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시장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정부의 개입은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에 시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는 데 국한되어야 한다.


물가가 폭등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시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겠는가? 곡지불문(鵠志不問)하고 물가를 잡겠다는 접근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현안이다. 이런 접근은 “유효하지도 않고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극도로 악화”시킬 따름이다.


물가 급등 원인별 다차원적인 대응책 필요


물가정책은 우선 폭등의 원인부터 합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원인이 공급에 있는지, 아니면 수요에 있는지, 유통구조의 문제인지를 점검하고 원인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 원인에 따라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조절하는데 정부가 개입할 수 있을 것이고, 유통의 문제라면 구조개선이나 경쟁의 촉진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초과수요의 문제라면 성장을 희생해서라도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의 물가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에 따른 농산물의 공급 불안, 총수요관리의 이완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대응하는 방식도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글로벌 인플레는 탄력적인 관세나 소비세, 환율 등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여야 하고, 성장 일변도의 총수요관리 정책도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한편으로는 총수요를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을 추구하는 상충되는 정책으로는 두 마리의 토끼를 쉽게 잡을 수 없다.


나아가 정부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경쟁을 촉진시키고 유통비용을 절감시키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특히 서비스 부문에서는 거의 모든 업종에 정부 규제가 엄격하여 세칭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다시 말해 일단 진입만 하면 경쟁 없이도 상당한 이윤을 누릴 수 있는 업종이 많다. 이것은 물가 문제뿐만 아니라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정유나 통신 서비스도 유통과정에서 폭리가 있다고 믿어진다면 기업을 윽박지르기에 앞서 진입규제 완화를 포함한 여러 차원의 경쟁촉진 정책을 먼저 도입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물가는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로 관리할 수 있는 경제변수가 아니다. 정부는 시장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여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 고위층이 직접 나서서 “치킨값은 괜찮고, 휘발유값은 묘하다”는 식의 정책 개입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정갑영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eong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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