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강병의 길: 효율이 비효율을 대체할 수 있어야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사건이 바로 대정봉환(大政奉還)이다.

일본 천황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일본을 265년간 다스렸던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慶喜)가 일본의 지배권을 다시 천황에게 돌려준 것이 대정봉환이다. 도쿠가와 이전에도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와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라는 사무라이들이 천황을 대신해서 일본을 지배한 기간까지 합하면 실로 700년 만에 사무라이들이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준 것이다.

당시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 그리고 도사번(土佐藩)이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세 지역의 사무라이들이 도쿠가와 막부에 반대하여 도쿠가와 막부로서는 패색이 짙은 시기였지만, 아직 일본 대부분의 지역들이 도쿠가와 막부에 충성을 바치던 상황에서 요시노부는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바로 정권에서 물러났다는 것이 당시는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당시 도쿠가와 막부가 정권을 내놓지 않고 끝까지 전쟁을 벌였으면 승리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전투를 벌여서 교착상태를 일으킨 후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존속이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물러나느니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워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순순히 정권을 내놓은 요시노부를 겁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시노부가 정말로 겁쟁이였는지 아니면 자신을 희생하여 일본 국민들을 대규모 전쟁에서 구한 것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국토를 피폐화시키는 전쟁을 피하면서 근대화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감으로써 일본은 서구화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조선의 정부는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서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일본군을 끌어들여서 동학혁명을 진압하는 등 어차피 시간의 문제인 역사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거나 늦춰보려는 국력을 낭비하는 내부적인 투쟁들만 벌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보다 능력 있고 효율적인 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경제 분야

보다 능력 있는 집단이나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무능력한 집단이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자동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 국가는 부국강병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무능력한 집단이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정당한 경쟁을 통하지 않고 갖은 정치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오히려 능력 있는 집단과 효율적인 시스템을 몰아낸다면 그 국가는 쇠락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사회에서 능력 있고 효율적인 것이 능력이 없고 비효율적이 것을 자연스럽게 대체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기업들이 주도하는 경제 분야일 것이다. 결국 더 좋은 물건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승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무능력이 능력을 이기고 비효율이 효율을 이기는 대표적인 분야라고 하면 바로 정치일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만 보아도 마땅히 사라져야 할 저축은행들이 정치인들에게 끈을 대서 몇 년을 떵떵거렸고, 무능하다 못해 유권자들을 속이는 정치인들이 지방자치 단체의 장을 맡아서 재정을 파탄시키고 하는 것을 보면 경제와는 달리 정치는 정말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대선이 있는 금년의 경우 거의 모든 정당들에게 후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선거 규칙을 바꾸자고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주장하면 실제로 이런 의견들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일부 정당에서는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부정투표가 발생하였는데 이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뻔뻔하게 국회의원 행세를 하고 있다.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승부하는 한국의 정치권을 기대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실력으로 대결하거나 결과로서 대결하여 패한 측이 깨끗이 물러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고 실력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부정한 방법을 통하여 패자가 승자를 물고 늘어지는 행위가 오히려 정당화되는 사회는 결국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멀리 유럽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 재정이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그대로 지켜낸 그리스국민은 자신들의 영특함에 남몰래 자랑스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만 영악한 이런 그리스국민들의 행태야말로 현재의 재정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며, 임시방편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리스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특히 금년은 우리나라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규칙에 따르고 능력과 효율성을 존중하는 경제 논리는 뒤쪽으로 물러나게 될 뿐 아니라 혹시라도 눈에 띄면 오히려 지탄을 받게 되는 이상하고도 이상한 시기이다.

또한 모든 이익 집단들이 정치인들로부터 말도 안 되는 약속을 받아내는 시기이기도 하고,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여 패자가 깨끗이 물러나는 풍토가 정치권에 조성되지 않는 한 정치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hahn@yonsei.ac.kr)

KERI 칼럼_20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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