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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의 플러스 성장을 견인하는 대중국 수출과 시장화


북한은 90년대에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경제후퇴의 늪에 빠져있었다. 대기근으로 인해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가장 비참했던 시절에 주민들의 하루하루는 ‘고난의 행군’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한동안 북한은 국제원조에 의존해 연명해야 될 정도로 경제가 파탄이 난 상태였다. 당시 북한경제의 회생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였다.

최근 수년간 북한의 경제상황은 확실히 달라졌다. 2009년 말 전격 단행된 화폐개혁의 부작용에 따른 경제적 혼란을 잠시 겪은 후 북한에서는 별다른 경제위기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 정부가 2010년 취한 ‘5·24 조치’로 대북 경제제재 효과가 나타나 북한경제가 다소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빗나갔고 북한경제는 소폭이지만 플러스 성장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식량 원조로 겨우 버텨온 시기와 비교한다면 지금 북한의 경제상황은 상당히 나아진 것이다.

북한경제의 호전된 모습은 식량 증산, 대중국 무역의 급증 및 시장경제의 확산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와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미미한 상황에서도 자체 곡물 증산으로 식량수급 상황이 개선되었다. 대외경제관계에서도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 중단에 따른 경화 수입 감소를 보전하고도 남을 만큼 중국과의 무역이 급신장하였다. 북한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소식들 대부분은 시장을 중심으로 경제가 활기 있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상상했던 북한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현상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시장에서 재산을 모은 신흥부자가 등장했고, 이들 중에는 국가기관과 결탁해 각종 이권사업을 벌이는 ‘돈주’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이동전화가 빠르게 보급되어 가입자가 벌써 수백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옛날 얘기가 되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북한은 어떻게 경제후퇴에서 벗어나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었는가? 북한의 대내외 경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경제성장을 가능토록 한 일등공신 중 외부 요인으로는 중국과의 무역 확대를 통해 외화벌이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점을 들 수 있다. 내부 요인으로는 시장화 및 이로 인한 사경제의 확산이 작용한 것이다.

북한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적절히 활용해 대중국 수출을 크게 늘임으로써 국가경제 운용에 필요한 외화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북한은 ‘5·24 조치’로 인한 경화수입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대중국 자원(석탄, 철광석) 수출과 의류제품 임가공 수출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2009년 7.9억 달러에서 2013년에는 29.1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 북한의 대중국 석탄 수출액은 2.6억 달러에서 13.8억 달러로 5.3배, 수출량은 360만 톤에서 1,655만 톤으로 4.6배 늘었고, 의류제품 수출액은 1억 달러 수준에서 5.9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의 대중국 수출 신장이 성장의 버팀목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어떻게 대중국 수출을 단기간에 급격히 늘일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불과 수년 사이에 석탄의 수출물량이 1,300만 톤 정도 늘어난다는 것은 생산능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석탄 수출의 확대가 내수 희생이 따르는 ‘밀어내기 방식’에 의한 것이라면 북한경제에는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을 것이지만 실제로 이런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당연히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의 급증은 북한의 지하자원 생산능력이 확충됨으로서 가능했다.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중국은 경제성장에 따른 자원 수입 수요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대북 자원개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의류제품 수출의 경우 북한은 ‘5·24 조치’ 이후 남북 위탁가공교역 중단에 따라 거래선을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는 중국으로 용이하게 대체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중국 임가공업자 확보에도 성공하였다.

북한에서 계획경제시스템의 작동이 멈추면서 자생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시장화의 성장 기여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시장 합법화를 계기로 북한에서 시장은 급속도로 확대되고 유통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다양한 개인 경제활동이 급격히 성장하였다. 시장화의 확산은 2000년대 후반 시장에 대한 단속과 통제 강화로 다소 주춤해졌다. 반시장적 조치는 2009년 말 단행된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사라졌다. 북한은 2010년부터 시장 유화적인 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이런 기조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지속되고 있다.

시장화의 초기에 생산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공장·기업소는 시장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7·1조치 이후 국영부문도 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는 기업이 일부 자재와 품목의 시장 조달을 허용하였고, 계획 이외의 생산물에 대한 시장 판매도 허용하였다. 국가 계획경제부문도 시장을 활용해 재정수입을 얻고 시장경제 부문에 의존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렇게 국가와 시장의 공생관계가 형성됨으로써 국영부문과 결탁하거나 활용해 자산을 운용하는 개인 사업자가 출현하는 등 비공식 사경제는 날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대규모 유통업자로 발전하였고 제조업, 건설업은 물론 석탄 채굴사업에 진출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아직까지 시장화로 인한 사경제의 발달은 서비스·유통부문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부 생산부문의 발전도 자극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시장화와 사경제의 확대는 전반적인 주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경제활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국제적인 고립과 경제제재 등 북한이 처한 대내외 환경을 감안한다면 북한이 플러스 성장을 이뤄내고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은 대단한 일이다. 이것이 북한 스스로 가용 생산요소를 활용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구사하고 ‘아래로부터의 시장화’에 의해 발현되었기 때문에 더욱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플러스 성장을 견인한 두 축은 외부 환경과 내부 상황의 변화에 취약하다. 대중국 일변도의 광산물 수출은 수요 감소와 국제가격 하락의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고, 제도권 밖에서 형성되는 국가 계획부문과 시장(비공식 사경제)의 공생관계는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과 같은 플러스 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고도성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현재 경제를 받치고 있는 두 축, 즉 수출산업과 시장화의 자생력 강화가 필요하다. 북한은 자원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제조업 수출산업 육성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의 수출 증대를 통해 외부 환경의 변화에 취약한 자원 수출의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이 독자적으로 수출산업화를 통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기에는 자본과 산업 기반시설이 너무나 부족하다. 남북협력의 경제개발을 통해 북한경제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온상인 시장의 확대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것은 여전히 딜레마이다. 그렇지만 국가가 민생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시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과거 북한은 시장을 적당한 선에서 허용하며 활용해 왔지만 지금 시장이 없는 북한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김정은 체제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통해 새롭게 개혁을 시험 중이고, 경제개발구 지정을 통해 개방을 확대 중이다. 이런 시장 지향의 개혁·개방이 중단 없이 추진되고 시장경제 인프라가 정착된다면 북한의 시장화는 불가역의 상태가 되어 성장을 견인할 것이다.

최수영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csy@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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