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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재정


참으로 대단한 선거였다. 우리 역사는 이번 6ㆍ2 지방선거를 어떻게 기록할까? 8번을 기표해야 하는 초대형 선거였고 정부와 여당이 전혀 예측치 못한 결과가 나왔으며 선거 이후 국정운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기록할 것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선거가 재정위기와 경제위기의 계기가 되었다는 기록은 남지 않기를 바란다.


결과를 놓고 그 원인을 정형화해서 분석하기 좋아하는 전문가와 언론은 이번 선거가 끝난 뒤 4대강, 세종시, 무상급식이 여당 참패와 야당 승리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4대강과 세종시는 포기할 것이며 전면 무상급식은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획일화된 분석과 전망은 위험하다. 당선자 수를 놓고 누가 이겼는가를 가늠하는 것도 문제지만 주요 공약들이 승리 혹은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번 선거가 정부와 여당의 독선을 저지해야 하겠다는 국민들의 심리를 반영했다는 점만은 분명하지만 그 이상으로 해석해서 이것 때문에 이기고 저것 때문에 졌다는 식의 주장은 곤란하다. 전문가와 언론이 나름대로 분석하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러한 주장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한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주요 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필요이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쇠고기 협상이 촛불정국을 야기하면서 현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포기했고 용산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자살에 반응하면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신 포퓰리즘에 편승했다.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이른바 ‘과잉반응 국정운영 사이클’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클에서 늘 과잉반응(overshooting)을 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이번에는 아마도 야당의 주장대로 4대강 사업을 포기해서 생긴 재원으로 전면 무상급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작에 문제가 있었듯이 이제는 4대강과 세종시 수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할 것이다. 국가재정법에 있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건너뛰고 환경론자들에게 엄청난 반발의 빌미를 제공하면서까지 서두를 이유가 과연 있었는지 차분히 다시 검토하자는 것이다. 이번에 4대강 사업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이 시점에서 시행하던 사업을 중단했을 경우 발생할 부작용도 비용으로 환산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4대강 사업을 계속할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난다면 현재 벌이고 있는 사업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출구전략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그만둘 경우 치러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이미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도 마찬가지다. 세종시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놓은 핵심공약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대선 승리에 수도이전의 공약이 주효했다는 당시 전문가와 언론의 해석은 세종시 사업을 오랫동안 부동의 국정운영 핵심과제로 자리매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한나라당 스스로도 선거 때마다 수차례 세종시 준수 약속을 하곤 했을 정도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수도이전 공약은 충청권을 차지하고자 한 정치적 공약이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런데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수도이전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을 과학적으로 수행해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직후부터 핵심공약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했지만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세종시 문제를 비정치적으로 다루려 해도 소용없었던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시작부터 정치적이었고 지금까지도 늘 정치적이고도 지역정치적인 이슈로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시 문제는 오히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방선거의 패자로서의 이명박 정부와 승자로서의 야당이 진정성을 갖고 원점에서 비정치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단할 경우 치러야 하는 부작용을 비용에 포함한 상태에서 철저하고 과학적인 비용편익분석을 해야 한다. 세종시에서 정치색을 지워가면서 말이다. 만일 세종시 문제에 포함된 정치색을 지우지 못하면 앞으로 오랜 기간 충청권은 지역분할의 경계선으로 계속 남을지도 모른다.


무상급식도 타당성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야권의 승리가 무상급식 공약의 승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기에 그렇다. 야당과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 당선자는 무상급식을 이번 승리의 원천으로 보고 추진하고자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핀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두세 개 국가를 제외하면 초중고교 전학생이 학교에서 무상이든 유상이든 점심급식을 제공받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나라의 학교급식 비율은 98%로 단연 세계 최고다. 이런 엄청난 급식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13% 무상급식 학생 비율을 100%로 끌어올리면서 3조 원을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현재 학기 중에 방과 후 저녁을 못 먹는 학생과 방학 중에 점심을 못 먹는 학생이 30만 명 정도에 이른다는 추계가 있다. 시급히 영양을 보급해야할 이들 젊은 학생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전면 무상급식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바로 이들 저소득층 자녀의 학기 중 저녁과 방학 중 점심이라는 사실을 ‘보편주의 복지’라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념을 갖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들 학생들에게 이미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학교급식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학기 중 저녁과 방학 중 점심에도 학교급식을 개방하여 희망 학생들에게 유ㆍ무상으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물론 저소득층 자녀들은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무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스쿨 뱅킹과 복지부가 주축이 되어 구축한 사회통합전산망을 연결하면 가능하다.


이번 지방선거를 치루면서 공약에 대한 사전 및 사후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선심성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정치후진국을 면할 수 없다. 더구나 당선자들의 공약이 당선 후에도 검증되지 않은 채 시행되면 심각한 재정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선거로 재정을 파탄내고 또 국가위기를 맞게 되었던 많은 국가들의 전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ㆍ멕시코에 이어 최근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재정위기를 이대로 가면 우리도 답습할 것이다.


따라서 선거 때마다 공약의 실효성과 재정 타당성을 검증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들의 실효성과 재정소요를 후보 스스로 밝히게 한 뒤 이를 전문기관을 만들어 검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온 공약들의 재정소요액만 합해도 현 예산의 10배는 될 법하다. 후보들이 무책임한 공약을 함부로 내놓지 못하도록 사전에 통제하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처럼 재정 타당성을 검증하는 전문기관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 있게 될 수많은 선거 과정에서 모든 공약의 타당성과 재정소요, 나아가 재원조달 계획의 준비에 대한 후보와 국민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선거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선거후 당선자에 대한 검증과 감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진짜 선거는 지금부터다. 지난 선거의 검증작업과 선거 후유증의 최소화작업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어느 선거보다도 이번 선거에서 이러한 사후관리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이번 선거가 우리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종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cba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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