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장기성장률이 매 5년 마다 1%씩 추락하여 현재 2%대를 나타내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수년 내에 0%대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단적으로 미시적인 기업의 성과와 거시적인 경제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으 로 성장의 한계, 성장위기의 징후들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추락하는 우리 경제의 성장다이나믹스
우리 경제는 성장잠재력의 하락,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경제는 높은 자본투입과 노동력 투입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이 가능하였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였으며 금융위기 이후 더욱 낮아져 최근 3% 초반대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공급이 둔화되고 투자증가율이 지속적으로 저하된 것이 주요 요인이다. 최근 기업의 설비투자 마저도 급격히 감소하 고 있다. 기업투자 증가율은 2001-2008년 기간에 5.7%였지만 2009-2015년 기간에 1.2%로 크게 낮아졌다. 기업투자 증가는 그 자체에 기술을 체화한 기계장치 등 설비의 증가 를 의미한다. 기업투자 감소는 기술이 체화된 기계장치의 투자 감소를 가져와 기업 생산성·경쟁력 저하를 초래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적자본 투자의 증가는 근로자에 내 재되어 있는 기술이나 지식같은 인적자본과 결합함으로써 높은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였다. 그렇지만 창조형 인적자본이 제대로 축적되지 않고 또 기술혁신을 통해서 경제성 장을 이루는 체제로 전환하는데 실기하면서 기존 산업의 경쟁력 상실, 신산업으로의 구조전환이 지연되는 등 경제의 역동성(dynamics)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을 중국이 잠식하면서 우리 산업의 점유율이 현저히 감 소하였다. 그동안 우리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을 중심으로 세계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왔으나, 최근 주력품목 수출 증가율이 오히려 더 부진하였다. 특히 2011-2015년 동안 우리나라 13대 품목 수출비중은 3.6%포인트 하락하여 일본(-0.9%포인트), 중국(-1.4%포인트), 미국(-2.9%포인트)보다 감소폭이 가장 컸다. 이것은 세계 시 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의 경쟁력이 저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를 살릴 미래 신성장 산업의 창출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신산업 관련 한· 중·일 삼국의 경제 지형이 변화되고 있다. 일본은 ‘잃어 버린 20년’ 이후 최근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 기업의 근본적인 역량이 다시 회복되는 한편,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내수시장 규모에 힘입어 빠르게 기술을 축적하면서 우리와 같은 수준의 제품 영역에서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무인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와 같이 내부적인 문제들에 함몰되어 있을 때 주변 국가들은 발 빠르게 신산업 창출을 위해 제도 개선 등과 같은 정책적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설계 역량의 배양이 관건
우리 경제는 미·거시적 지표들로 나타나는 성장의 한계와 함께 과거의 성장 방식으로는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더 이상 선진 기술이나 지식을 베끼거나 모방하여 습득하는 모방형 인적자본 축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기가 어려운 경제 구조로 진입했다. 새로운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역량 있는 창조적인 인적자본의 축적, 그에 따른 기술진보가 새로운 성장동력원이 되는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이러한 전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산업의 발전은 선진국이 제시한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를 가지고 빠르게 모방·개량하면서 생산하는 모방적 실행전략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제 이러한 성장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 창의적 개념설계의 역량을 우리 스스로 확보하지 않고는 진정한 산업 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가기 어렵다.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즉 개념설계 역량을 빠르게 배양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우리 산업의 경쟁력의 한계와 새로운 성장동력산업 창출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활성화 위해 교육개혁, 경쟁시스템 재건 필요
따라서 경제위기·성장한계를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과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이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제4차 산업혁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을 도전적으로 제시하도록 자극하고 산업계의 파라다임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첨단연구와 기초 개념이 강한 창의 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암기위주 주입식 교육을 지속한다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없어질 직업을 위한 교육을 하는 것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은 더 이상 지식을 암기하는 역량이 아니라, 기술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 배우는지를 배우는 자기주도 학습역량이 중요하다.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 력을 길러주는 심층학습(deep learning)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우리 산업이 세계의 기술 프로티어에 접근해 가면서 독자 기술로 승부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더 이상 남의 것을 답습하는 인적자본으로는 성장이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정부는 수능시험제도 폐지와 같은 대입제도 개혁 등 교육개혁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자본주의의 경쟁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되어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역동성이 확보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인적자본 선별에서 기업 선별에 이르기까지 우 리의 자본주의의 경쟁 시스템이 약화되었다. 보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성장과 함께 보다 비효율적인 기업의 사업 축소, 새로운 기업의 진입과 성과가 낮은 기업의 퇴출은 경쟁과정의 한 요소이고 이런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시장 시스템은 경쟁 촉진을 통해 생산성 증대를 가져온다. 애플, 패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등 새로운 창업기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여 창업 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기업의 생태계는 급격히 그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생산성이 낮은 전통분야에서 유통 산업 규제, 적합업종 규제 등 새로운 진입장벽을 만들어 경쟁을 억제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게임규칙을 선결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함으로써 신산업 의 창출을 막는 것도 문제다, 과도한 규제는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하거나 혁신을 제한하고, 기술확산을 크게 저해한다. 규제개혁특별법·규제프리존법 등은 새로운 산업의 창출과 우리 산업의 활성화를 돕는 법안들이다. 차기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관련 미래성장동력의 빠른 활성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규제개혁을 포함하는 제도정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lbk@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