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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藥價)의 ‘시장형 실거래가 구매제도’ 타당한가?


1. 정책당국의 확신편향(confirmation bias)


“지옥에 이르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영국속담이 있다. ‘촌철살인’의 경제적 함의를 담은 경구(警句)가 아닐 수 없다.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현실은 ‘사전적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설’로 설명한다.


정책실패는 대체적으로 2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하이에크(Hayek)의 ‘지식의 문제’이다. 정책당국은 “규제에 필요한 정확한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정확한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불완전한 지식이나마 개인 간에 사적(私的)으로 부존되어 있어서 국가가 이를 온전히 취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요인은 정책입안자의 오류가능성을 열어놓지 않는 ‘확신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신편향은 대체로 포퓰리즘적 ‘대의명분’에서 비롯된다. 대의명분에의 포획은 ‘자기최면’을 가져올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책은 그 ‘화려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 10월을 목표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 제도는 요양기관(병원)이 의약품을 고시가(상한가)보다 낮게 구매하는 경우 차액의 일정부분을 요양기관에게 인센티브(장려금)로 지급하고 이듬해에 의약품가격을 차액만큼 인하하는 제도이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의 도입 취지는 “리베이트 근절을 통한 약가인하 및 약제비 절감”과 “리베이트의 R&D투자로의 선순환 유도”이다. 누구도 그 취지가 갖는 명분을 부정할 수 없다. ‘저가구매유인제도’는 당장 시행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이유로 그 성공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성공’ 대신 ‘정착’을 대입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글의 목적은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2.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의 개요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현행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말 그대로 요양기관과 약국(제약회사) 간에 거래된 실제가격(실거래가)을 기준으로 약가를 상환해 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실거래가 상환제도’하에서는 요양기관이 의약품을 싸게 구매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요양기관과 약국 간에 ‘담합’할 여지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그 정황적 증거로 “전체 요양기관의 거래신고가격이 상한금액의 99.5%”임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는 고시가 이하로 약품이 거래되지만 실거래가격을 고시가로 신고해 청구하고 그 차액을 ‘리베이트(rebate)’ 자금화한다는 것이다. 반면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요양기관(병원)이 의약품을 고시가보다 싸게 구입했을 때 그 차이의 70%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즉 저가구매에 따른 유인을 제공하는 ‘저가구매유인제도’로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표>의 가상 사례를 들어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의 도입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표> 현행 및 개선안 약가제도 비교


보건복지부는 현행제도 하에서는 실제 거래가격과 관계없이 실거래가를 상한금액으로 신고해 청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 거래가격과 상한가 간의 차액(또는 그 일부)이 ‘리베이트’로 요양기관(병원)에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선안에 따르면 요양기관이 1,000원짜리 약품을 900원에 구입하는 경우 환자와 요양기관이 각각 30원과 70원의 혜택을 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이하 ‘저가구매유인제도’)가 작동하면 요양기관이 이미 70원의 금전적 유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보험공단)도 인하된 약값을 기준으로 다음 연도에 해당되는 약가를 일정부분 인하함으로써 보험재정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저가구매유인제도’의 예상되는 부작용


약품은 ‘구매자와 선택자’가 분리되는 특수한 재화이다. 약품을 환자가 아닌 전문 의료인이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에서의 전공도서와 유사하다. 전공서적은 학생이 구매하지만 교수가 채택한다. ‘경제적 유인’이 작용할 공간이 거의 없음에도 교수의 필요에 의해 교과서가 채택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저가구매유인제’의 가장 큰 취약점은 왜곡요인이 내재(built-in)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할인 폭이 커 그만큼 인센티브를 많이 제공받는 의약품”을 선택할 유혹을 받게 된다. 결국 환자에게 필요한 약품이 아닌 “의사 또는 의료기관 경영진”의 관점에서 선택된 약품이 처방될 위험이 있다. 또한 ‘저가유인제도’는 의약품의 약가 인하에만 집착하고 있다. 약제비는 ‘가격변수’인 약가뿐만 아니라 ‘수량변수’인 처방수량과 처방빈도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1) 저가구매유인제는 가격하락폭이 큰 고가(高價) 의약품의 과잉투약을 유발해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를 오히려 해칠 수 있다.


저가구매유인제는 약가협상의 결과에 대해 약가 마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가 마진 없는 진료권과 조제권”을 기본 축으로 하는 의약분업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 이는 의약분업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다. 절약된 약가의 70%를 병원에 주겠다는 것은, ‘낮은’ 의료수가를 벌충하라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의료 수가’가 문제라면 수가를 조정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저가구매유인제는 경쟁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다. 경쟁은 “선수와 심판의 관계설정”으로 요약되며, 이해관계자 간의 경쟁이 공정하려면 경기규칙이 불편부당(impartial)해야 한다. 요양기관이 약을 싸게 구입하는 경우 고시가와 실제 구매가 차액의 일정부분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정부가 이를 근거로 이듬해에 약값을 최대 10%까지 인하하겠다는 것은 정부와 병원이 한편이 되어 다른 이해관계자인 의약품 공급자(제약회사)를 압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약시장에서 병원은 ‘갑‘의 지위를, 제약회사는 ‘을’의 지위를 갖는다. 저가구매유인제도는 ‘정부’라는 ‘슈퍼(super) 갑’이 나타나 병원에게는 ‘창’을 주고 제약사의 ‘방패’는 빼앗아버리는 격이다. 정부는 의약품 구매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발 비켜난 ‘병’, 즉 심판으로 남아야 한다. ‘갑’의 힘이 커질수록 또 다른 ‘거래의 변종’이 등장하게 된다. 규제의 역사는 “규제, 규제 회피, 재(再)규제, 재(再)규제 회피”의 역사로 보면 된다.


‘저가구매유인제도’의 가장 큰 쟁점은 올해의 ‘저가구매’가 이듬해 약값 인하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 아파트의 경우 판매자의 사정에 따라 ‘급매물(急賣物)’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급매물 가격이 다음 거래에서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급매물은 소진되면 그것으로 끝난다. 도산 직전 또는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의 경우 원가 이하에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다. 이는 ‘급매물’에 해당한다.2) 저가구매유인제도는 “급매물 가격을 차기 거래의 기준가격으로 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저가구매유인제도가 정착되면 ‘품질이 아닌 가격’ 경쟁에 함몰될 수밖에 없어 인도나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야 한다. 무한가격경쟁에서 미래를 위해 투자할 제약회사는 없다.


‘저가구매유인제도’에 의한 ‘약가 인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병원이 고시가 대비 싼 값에 의약품을 구매하면 ‘당장은’ 고시가와 거래가 간의 차액에 해당하는 만큼 인센티브를 누릴 수 있지만 이듬해에 해당 약가가 인하되면 병원의 입장에서 ‘인센티브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 또한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도 이듬해에 의약품가격이 깎이느니, 높은 가격에 의약품을 계약하고 병원의 ‘인센티브 기회손실(opportunity loss)’을 보전하는 ‘이면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이처럼 또 다른 이면계약의 ‘변종(variation)’을 낳게 된다. 새로운 변종거래를 통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경제적으로 윈-윈(win-win) 관계가 성립되면 제약회사와 병원 간의 유착은 고착화된다.3)


4. ‘저가구매유인제’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는가?


약제비 절감을 위해 제약업계가 대안으로 내놓은 ‘처방총액절감제’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 제안은 의사가 환자에게 꼭 필요한 종류의 약을 적정량만큼만 처방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잉처방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처방이 줄어들면 제약업계의 매출도 감소하는 만큼 제약업계 입장에서도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진정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저가구매유인제’를 통해 리베이트를 근절하고 R&D자금으로 선순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저가구매유인제는 병원과 제약회사 간 ‘이면계약’을 부추겨 병원의 음성소득만 키울 수 있다.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이 필요하다. 리베이트 수수의 ‘쌍벌제’ 적용이 그것이다. 현재는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회사만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리베이트는 ‘당사자가 존재하는’ 일종의 불법거래이기 때문에 형평성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일방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을보다 칼자루를 쥔 갑에 대한 처벌강도가 높아야 한다. 이 같은 원칙을 ‘의료 리베이트’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리베이트를 줄이기 위해서는 리베이트가 성행하게 된 구조적 요인을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뿌리는 놓아두고 줄기만 자르는 셈”이 된다. 리베이트가 성행한 이유는 제약회사들이 “리베이트를 지급할 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제네릭(Generic,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카피약품) 가격은 ‘오리지널’에 비해 너무 비싸다. 정당한 연구 및 기술 개발료를 지불하지 않은 의약품의 가격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80%대라는 것은 일종의 ‘무임승차’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제약회사들은 제네릭의 생산과 영업에 치중해 리베이트가 성행한 것이다. 제네릭의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는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면 된다. 그러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에 연동될 수밖에 없는 제네릭의 가격도 낮아진다.4) 저가구매유인제도를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리베이트가 들어갈 틈 자체가 없어진다.


리베이트의 문제는 “리베이트를 개인이 갖는다”는 것이다. 리베이트의 ‘기부금화’를 통한 공적관리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제약산업이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의료기술 기반 확충기금’(가칭)에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그 대가로 세제혜택을 받으면 된다. 기금은 의료인의 자질 향상 등을 위해 지출하면 된다.5) 요양기관도 그동안 리베이트에 의존해 진행해 온 각종 행사 등을 자체 예산으로 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공단은 간접공동의료비(overhead cost)를 의료수가의 일부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조치로 리베이트라는 음성적 관행이 없어진다면 이는 보험재정 개선 그 이상의 긍정적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5. 에필로그


‘차선(次善)이론(second best theorem)’의 시사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자리에서 상론할 겨를은 없으나 차선이론은 “부분적 개선을 통해 차선(second best)을 지향하는 정책접근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는 한마디로 전체를 바꿀 수 없으면 ‘덧칠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의료보험 시스템은 국가 개입에 의한 ‘일종의’ 사회주의 시스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늘 “어떻게 하면 시장원리를 도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시가와 실제 구매가 차이의 일부를 유인으로 보장하는 것을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책 왜곡을 더할 뿐이다. 제네릭의 가격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과 연동되어 있다면 차라리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을 대폭 낮추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약 산업의 환골탈태가 절실하다. 우리나라 제약 산업의 위상이 GDP 규모 기준 세계경제 15위국에 어울리는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제약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좁은 시장에 너무 많은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기술력이 아닌 영업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리베이트로 스스로 자승자박한 것이 제약업계의 자화상이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M&A를 통해 굵직한 주력 기업을 키우지 않고서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매출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도 제약 산업을 ‘신(新)성장동력’화하려면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 도입이 정책당국의 정책기술 수준이라면, 제약 산업의 신성장동력화는 ‘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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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의원의 1회 처방 평균 의약품 품목 수는 4.16종(2007년 기준)으로, 미국

(1.97종)이나 독일(1.98종) 등에 비해 두 배 이상이며 일본(3종)에 비해서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2007년 “약처

방 품목 수만 줄여도 건보재정을 매년 1000억 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새

로운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기존 보험재정 지출구조를 개선해 불필요한 낭비요인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2) 시장경제에서 ‘도산(bankruptcy)’은 시장가격에 비용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의 도태를 의미한다. 저가구매유

인제는 가장 취약한 기업을 기준으로 건강한 기업을 죽이는 것에 비견된다. 이는 공권력에 의한 ‘재산권의 침

해’가 아닐 수 없다.

3) 최근(2010. 3) 대형 병원의 원내처방약품 공개입찰에서 수차례 유찰이 발생한 사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

는 일종의 정책시행에 앞선 ‘test bed’의 성격을 가진다. 이는 저가유인제도의 ‘현실적합성’이 그만큼 떨어지

는 것을 웅변해 주는 사례이다. 정책당국은 test bed의 결과를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4) 기등재된 의약품의 주기적 사후평가제도, 기등재된 약의 경제성 평가에 의한 목록정비 등도 정당한 근거에 의

한 약가인하 방안이 될 수 있다.

5) 제약기업에게 ‘판매촉진비의 매출원가 비중’을 공시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회계정보를 공시하는 것은

일종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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