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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경쟁과 시장의 실패, 타당한 개념인가


경제학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용어 중 하나가 ‘시장의 실패’이다.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기 위해서는 시장이 ‘완전경쟁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의 시장은 곧잘 실패한다는 것이다. 즉 외부성, 공공재, 독점, 정보의 비대칭성 등의 경우에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여 시장이 실패하므로 정부가 개입하여 이를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시장에서는 완전경쟁시장에서 이뤄질 수 있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완전경쟁시장은 아무런 비용이 없고 자원의 이동성도 없는 완전한 시장을 일컫는다. 그런데 시장은 교환의 편의, 즉 교환에 따른 여러 가지 비용(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겨나고 이를 더욱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사는 사회가 완벽하지 않는 한, 거래비용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완전경쟁시장에서 상정하는 것처럼 영(零)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완전경쟁시장은 인간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진공 상태인 가공의 세계이다. 그런 가공의 세계와 온갖 종류의 거래비용이 존재하고 마찰이 존재하는 현실 시장을 비교하여 후자가 실패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비교를 ‘열반오류(nirvana error)’라 함은 잘 알려져 있다.


‘시장의 실패’의 준거가 되는 완전경쟁시장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경쟁의 개념을 검토해야 한다. 아담 스미스(Smith)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인식한 경쟁은 ‘경쟁하다(to compete)’를 뜻하는 동사적 의미이다. 즉 판매자는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희소한 자원을, 구매자는 판매자가 가지고 있는 희소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것이 경쟁이다. 자원이 희소하므로 경쟁이 생기고 이는 곧 경쟁의 본질은 대항적(rivalry)이며 다툼(emulation)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경쟁은 거래 상대방에게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려는 시장과정(market process)으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동물 세계의 경쟁(biological competition)과 인간 사회의 경쟁(catallactic competition)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동물 세계에서의 경쟁은 영합(零合)의 게임으로서 패한 자는 곧바로 폐기된다. 문자 그대로 정글의 세계다. 반면에 인간 사회의 교환경제에서의 경쟁에서는 패한 자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차선(次善), 차차선(次次善)의 자리로 이동한다. 양합(陽合)의 게임이며 경쟁을 통해 자원이 적재적소에 배분된다. 정글의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제 문제는 중요하게 인식돼야 할 동사로서의 경쟁 개념이 신고전학파로 넘어오면서 상태(state, situation) 개념으로 바뀐 데 있다. 하나의 상태로서의 완전경쟁시장은 서로 경쟁하는 많은 기업들이 산업에 자유롭게 진입하여 경쟁한 결과,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1) 그러므로 완전경쟁 개념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 부적합한 이유는 가정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른 현실 세계에서의 실현 불가능성의 문제도 있지만 ‘경쟁하다’를 뜻하는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는 “완전경쟁은 과정에 의해 결과적으로 도달하거나 가까워지려는 상태에서 경쟁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경쟁 행위의 범위를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행위의 가능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과정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 상태를 논의하면서 마치 경쟁의 본질과 과정에 대해 논의하는 것처럼 믿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에 빠뜨리는 것이다”라는 하이에크(Hayek)의 지적에서 더욱 뚜렷해진다.2)


경제학이 순수 논리학이 아닌 사회과학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려면, 신고전학파에서 가정하는 ‘주어진’ 것들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모든 지식이 ‘주어진’ 것이라고 가정해 버리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설명해야 하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모든 것’을 무시하게 되고, 경제학은 경제현상의 탐구가 아니라 순수 논리학의 탐구가 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비용곡선들은 모두 최소화된 비용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기업이 비용 최소화 방법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인가는 정작 ‘경쟁’을 통해서 발견해야 하는 사항이다. “경쟁은 발견적 절차이며, 사람들은 경쟁을 통한 발견적 절차에 의해 지식을 창출하고 집적하여 경제 활동에 대한 견해를 형성한다”라는 하이에크의 지적은 바로 이런 점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편 완전경쟁에 대한 커즈너(Kirzner)의 비판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 커즈너에 따르면 “완전경쟁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동일한 행동을 하며, 다른 참가자가 하는 방법 이외의 다른 더 좋은 방법으로 더 이상 달성할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의 행동을 주시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3) 즉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더 매력적인 기회를 찾을 수도 없고 절감해야 할 거래비용도 없기 때문에 시장이 할 일이 없어진 상태가 바로 완전경쟁시장이다.


완전경쟁과 재산권의 관계를 살펴보면 개념적 오류가 더욱 명백해진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완전경쟁시장은 더 이상의 경쟁 행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다른 경쟁자보다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할 여지가 없는 상태다. 이는 곧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여지가 없으므로 경쟁을 뒷받침하는 재산권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또 정의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4) 즉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재산권의 역할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가공의 세계에 입각한 ‘완전경쟁’ 개념과 이에 준거를 둔 ‘시장의 실패’ 개념은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 적용될 수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많은 사회적 갈등, 특히 사업자들이 다른 사업자들을 이기기 위해 벌이는 행동과 이를 억제하려는 제반 정부 규제 간의 충돌과 갈등은 ‘과정’과 ‘상태’가 구별되지 않은 개념적 오류에 그 뿌리가 있다.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 yykim@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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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전경쟁 개념을 만들어 낸 쿠르노(Cournot)의 질문은 “경쟁이 모두 끝난 뒤의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데

있었다. 이후 제본스(Jevons)와 에지워드(Edgeworth) 등에 의해 경쟁과 시장구조가 결합되었으며, 클라크

(Clark)와 나이트(Knight) 등에 의해 더욱 정치화(精緻化)되었다.

2) Hayek F. A., “The Meaning of Competition,” in Individualism and Economic Order, Chapter V,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8.

3) Kirzner, Israel M., “Competition and Monopoly,” in Competition and Entrepreneurship, Chicago and Lo-

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4) 재산권은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태동하며 더욱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을

참조. Demsetz, Harold, "Toward a Theory of Property Rights," American Economic Review, May 1967,

pp.347-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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