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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오천만 시대의 완득이


동명소설을 영화화하여 530만 명이라는 적지 않은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고완득은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둔 한국인이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 역할을 했던 이자스민은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남성과 결혼하여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지난 4월 총선결과 여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그의 학력과 경력에 관한 논란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국회의원 자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이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그것은 마땅히 비난받을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우리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적극적인 이민허용은 미국경제발전의 시발점


흔히들 미국을 이민의 나라라고 한다. 물론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오늘날 미국의 시작은 1606년 12월 런던을 출발하여 이듬해 4월 지금의 버지니아 부근에 상륙한 143명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남자들뿐이었던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2년 후에는 본국에서 여자들을 데려올 정도로 안정된 정착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143명의 남자와 그들을 뒤따라간 10여명의 여자들만으로는 오늘날 세계최대의 경제대국 미국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의 뿌리는 수없이 많은 근원을 가진 다양한 이민에서 찾을 수 있다. 농업의 개념이 상업형으로 바뀌면서 농토를 잃고 도시를 떠돌던 농민들과 종교적 자유를 찾아 고국을 떠나야 했던 순례자들이 초기 미국이민의 시작이었다. 유럽이 대기근의 몸살을 앓던 183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미국으로의 이민은 1820년과 1879년 사이 850만 명 규모에 달했으며 1880년부터 1914년까지 1,200만 명이 더 이주해 올 정도로 그야말로 인구의 대이동이 있었다. 그러한 이민 이외에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64만5천여 명으로부터 비롯되어 최고 400만 명에 달했던 노예가 필요했을 정도로 미국에서의 노동력은 항상 부족한 생산요소였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그와 같은 대규모의 노동력 보충이 없었다면 미국은 아마도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도 미국만큼의 경제력에 미치지 못한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만큼 적극적인 이민이 미국의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으며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인구의 노령화를 걱정하는 오늘날에도 미국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이민을 받아들이며 이들 대다수가 미국의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단일민족에서 다문화국가로: 노동력수요가 야기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주변에서 다문화란 용어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며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 우리국민들은 어려서부터 단일민족이란 개념을 매우 자랑스럽게 배워왔다. 앞서의 미국과 달리 좁은 국토의 우리들에게 그나마 가장 풍부했던 생산요소는 아마도 노동력이었을 것이다.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 부족했던 생산을 가지고 많은 인구를 부양해야 했기에 남을 챙기기 보다는 우리가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최고이고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은 부자연스럽다 여기는 풍토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람들 입에서 왜X, 떼X, 양X 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유명인의 TV 인터뷰에서조차 걔네들이라고 외국인을 지칭하는 모습을 보면 무의식 속에 배어있는 배타성이 얼마나 깊은 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우리가 지난 반세기 가까이 외부지향적인 산업화 전략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역설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 땅의 산업화 전략은 우리에게 비교적 풍부했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자본이 부족했고, 자원이 부족했고, 기술이 부족했지만 원조든 차관이든 투자이든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여 남아도는 노동력과 결합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가발, 섬유․의류,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인 수출산업이 일어났고 광부, 간호사, 건설노동자들은 일감을 찾아 직접 외국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산업화 덕분에 자본과 기술이 축적되기 시작했고 제철, 화학, 자동차, 조선, 전기·전자 등 중화학 공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고부가가치의 최첨단 산업이기에 임금수준도 올라갔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학력도 점차 높아졌다. 너도 나도 대학에 진학했고 그 수요에 따라 대학의 숫자도 늘어났고 대학졸업자 역시 증가했다. 그러나 고학력의 그들은 더 이상 힘들고 험한 일을 하기 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소위 3D 업종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자란 부분을 채우게 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말이 잘 안통해서인지 천성이 워낙 착해서인지 대부분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무시당하고 맞고 다치고 임금을 떼이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은 딱히 어디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다.


인적자원유치를 위한 ‘우리’라는 개념 재확립의 필요성


지난 달 우리나라 인구가 처음으로 5천만 명을 넘었고 세계 일곱 번째로 소득 2만 불과 인구 5천만 명의 20-50 클럽에 도달했다고 난리들이다. 그런데 2045년이면 인구가 다시 4천만 명 대로 하락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2050년이면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34.5%에 이르러 인구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인 1.1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일 수는 없다. 우리에게 노동력은 더 이상 남아도는 생산요소가 아니며 오랫동안 간직해온 우리라는 개념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완득이와 완득이 엄마 그들도 5천만 인구 중에 포함된다. 우리가 최소한 지금과 같은 경제규모와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원한다면 우리 주변에 더 많은 완득이와 완득이 엄마를 포용해야 할 것이다.


지난 달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0년 애리조나 주의 이민법에 대해 대부분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법의 시행에 반대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판결에 앞서 불법이민자의 30세 미만 자녀를 추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공표했다. 미국에 소중한 인적자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쫓겨나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개방적인 이민정책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공약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비슷한 시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될 우리에게도 최소한 외국인 노동자 또는 더 크게 봐서는 이민과 국적문제까지도 거론해봐야 할 중요한 주제이다. 경선규칙이나 후보단일화 같은 여론몰이가 아닌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진솔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대통령 선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권영민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y_kwo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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