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이란 우리나라 경제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수출은 둔화되고, 내수부진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ㆍ금융정책이 작동하지 않은지도 오래다. 총공급-총수요의 선순환 구조는 붕괴되고, 저성장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의 배경에는 저출산ㆍ고령화가 자리 잡고 있지만 잘못된 정부정책도 한몫 하고 있다. 현재의 저성장을 단순히 경기침체로 인식하고 경기부양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경기부양을 위한 임시방편의 정책으로 이 난국을 풀기에는 턱없어 보인다. 고통스럽고 어렵더라도 경제 전반에 걸친 개혁을 통해 경제 시스템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내년을 정점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잠재성장률뿐만 아니라 총수요측면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베이비붐세대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한축을 담당했던 세대였지만, 대부분 자식교육과 부모를 부양하느라 자신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한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알뜰살뜰 모은 돈에 은행대출을 합쳐 무리하게 집을 장만했지만 기대와 달리 집값은 오르지 않고 은퇴할 시기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소비하면서 인생을 즐길 여력이 없다. 은퇴한 세대들도 소비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저금리로 인해 금융소득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대출을 받아 조그만 가게를 오픈해보지만 경기가 안 좋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다. 자연히 가계부채가 쌓일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대비 163%를 기록하여 ‘7대 가계부채 위험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거나 금리가 인상된다면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부실로 이어져 불황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위기를 피하고 소비여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계 스스로 부채를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 경기가 회복되면 부채는 자연히 해결될 거라는 믿음을 주고 빚을 내어 소비를 부추기는 미봉책으로 일관한다면 그 대가는 혹독할 수 있다. 인위적인 저금리로 발생하는 자본재에 대한 과잉소비와 과오투자의 결과가 대공황이었다는 과거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계부채를 조정하는 과정은 고통이 따르고 어려운 일이며, 정치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이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환경도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디지털화는 글로벌 생산구조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과거에는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면서 모든 부품을 단일 생산시설 내에서 생산하는 생산방식을 따랐다. 자연히 대규모 투자와 노동이 필요한 시대였다. 지금도 대규모 시설투자를 요구하는 산업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혁신과 유연성을 요구하는 융복합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아무리 복잡한 공정과정도 쉽게 코드화해서 세계 곳곳에 있는 기업들에게 전송하여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듈화 생산방식으로 새로운 혁신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으며, 제품의 수명주기는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있다. 자칫 투자가 너무 빠르거나 늦어 실기하거나 잘못된 분야에 투자할 경우 기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고용, 임금, 이윤폭, 심지어 가격결정까지 정부가 간섭하고 있다. 납품단가 인하, 납품품질 등에 대한 요구는 납품업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부당행위로 간주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정부의 보호아래 혁신을 게을리 하는 국내 중소기업과 공급사슬을 형성하는 것은 공멸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고용의 유연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국내 선도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고,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우리보다는 대만이나 중국의 하청업체들과 공급사슬을 형성하기를 원한다. 정부가 돈을 풀수록 한계기업의 생명만 연장되고 비효율성만 커지고 있다.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고, 규제를 혁파하고,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정부의 간섭을 줄여 수많은 글로벌 경쟁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수를 받쳐줄 국가재정도 만성적인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과거에는 외부충격으로 일시적인 적자가 발생했다가 경기가 회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재정수지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만성적인 적자가 구조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재정적자가 2011년에 11.4조원, 2014년에 25.5조원에 달했으며, 2015년에도 33.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경기침체로 세수입이 기대보다 적게 걷힌 탓도 있지만 선심성 복지지출이 크게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올린다면 성장둔화, 실업증가, 복지수요 증가, 재정적자 증가라는 재정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한 재정적자의 결과는 분명하다. 어느 나라건 국내 저축이 감소하고,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재정적자가 지속되면, 필요재원을 해외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고 국가부도의 위기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재정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던 남유럽 국가들이 걸어온 길이다. 복지제도의 재구조화와 공공부문의 개혁이 절실한 이유이다.
저출산ㆍ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서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저출산 정책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 효과는 20년 후에나 나타나게 된다. 이민확대와 교육개혁을 통해 노동의 양적확대와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여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이고 국내 자본의 유출을 막아야한다. FTA를 확대하고 서비스분야의 혁신을 통해 경제영토를 넓힘으로써 협소한 내수시장의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 한계기업의 청산, 가계 부실대출 정리, 공공부문 개혁, 노동시장 개혁, 복지제도의 재구조화 등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때 내수가 살아나고 생산성이 향상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총수요-총공급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개혁은 국민들에게 고통과 인내를 요구해야하는 어려운 일들이다. 인기에 연연하는 정치가라면 엄두도 못 낼 일들이다. 존경받는 지도자로 역사에 남겠다는 각오로 경제 전반에 걸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저성장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연구실장, glcho@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