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분기 합계 출산율이 0.88명으로 기록되었다. 0.98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2018년 합계 출산율보다 더 악화된 수치이다. 이 같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미래에는 한 세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인구가 반씩 줄어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6~2015년 간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쏟아 부은 예산만 152조 1,000억 원에 이르며 2016년부터 작년까지 116조 8,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여 13년 간 총 268조 9,000억 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도 정책의 성과는 전무하고 오히려 출산율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정책에 어떤 문제점이라도 있는 걸까, 현재 우리 정부의 저출산정책의 대강을 한 번 살펴보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내세우는 5대 정책과제는 다음과 같다: (i) 출생부터 아동의 건강한 성장지원 (ii) 모든 아동과 가족에 대한 평등한 지원 (iii) 제대로 쓰는 재정, 효율적 행정지원체계 (iv) 청년의 평등한 출발지원 (v) 이이와 함께 하는 일·생활 균형. 이 정책과제들을 근간으로 하여 많은 세부정책들이 다양한 생애 단계에 걸쳐 촘촘히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책들을 거의 다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효과 면에서 보자면 백약이 무효인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높은 청년실업률과 이중(dual) 노동시장 구조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높은 청년실업률 하에서는 결혼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결혼하더라도 만혼으로 출산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보호를 받는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과 낮은 임금의 다수의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이중 노동시장 구조는 청년 실업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 현실에서 좁은 대기업 정규직의 문은 낮은 출산율과 무관할 수 없다. 많은 청년들이 실업 상태에 있거나 저임금의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상황에서는 많은 출산율 제고정책들의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고 이들 청년들은 심지어 정책의 대상도 아니다. 결국 꾸준한 경제성장과 함께 이중 노동시장 문제가 해소가 되지 않고서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전기(轉機)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고임금의 안정적인 정규직을 가진 사람들도 결혼과 출산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에 있다. 일종의 가치관 혹은 문화의 변화인데 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표본가구의 13세 이상 가구원 중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48.1%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2010년의 64.7%에 비하면 크게 하락한 수치이다. 또한 최근 인구복지협회의 20대 미혼 남녀 1,000명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향후 출산 의향에 대해 10명 중 6명(56.9%)은 낳고 싶지 않은 편(낳고 싶지 않은 편 41.5%, 절대 낳지 않을 것 15.4%)이라고 답해 낳고 싶은 편 43.3%(꼭 낳을 것 12.3%, 낳고 싶은 편 30.8%)이라는 응답률을 앞섰다. 결국 취업이나 소득과는 별개로 청년들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에는 이 같은 가치관 또는 문화의 변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하지 않고서는 다른 정책들의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저출산정책은 기능중심적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출산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해소 또는 완화하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현재의 부정적 인식은 단순히 출산·육아의 어려움을 덜어줌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인식, 즉 ‘가족의 가치(family value)’를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저출산이 확산되는 문화적 흐름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저출산정책의 한 축으로서 ‘가족의 가치’를 확산하는 정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치적인 측면의 저출산정책이 마련되어야 기능적 저출산정책의 대상이 되지 않는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혼 또는 자녀를 가지지 않는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배우자와 자녀로 구성된 자신의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을 통해 얻는 기쁨도 충분히 소중한 가치라는 점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가치인 것처럼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출산정책은 ‘가족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이 가치가 실현되고 또한 국민들이 이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이상적(理想的)이라 하겠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tk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