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새 국무총리 인선이 없던 일이 되더니, 임기가 곧 끝나는 헌법재판소장과 이미 물러난 장관들 자리도 상당기간 비어있을 전망이다. 속 좁은 중국정부가 사드 배치에 반발해 연이어 무리수를 둬도, 필리핀 경찰본부에서 한국인이 살해되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도 정부 대응은 미지근하다.
실종된 국정 리더십과 무기력한 정부만 문제가 아니다. ‘촛불’과 ‘반(反)촛불’의 극심한 분열상이 탄핵심판 후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이다. 지금의 난국이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한 한걸음 후퇴의 성장통으로 승화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난맥상이 초래된 까닭을 지도자의 자질에서 찾으면 해법은 부적격 지도자 교체라는 비교적 단순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의 등극과정을 복기해보면 ‘자질론’만으론 설명이 어렵고, ‘행태론’과 ‘상황론’까지 빌려야 할 만큼 문제가 훨씬 복잡함을 깨닫게 된다.
다른 유력한 견해는 1987년 헌정체제인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 등이 잉태한 부산물로 최근의 진통을 진단한다. ‘체제론’ 또는 전통적 ‘제도론’과 맞닿은 이런 시각은 다원화된 국정 환경과 진화한 국가발전단계에 걸맞게 권력구조도 분권형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대안으로 이어진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헌법과 공직선거법을 고치고 ‘준조세방지법’을 만들어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통과 관습, 그리고 의식과 문화까지 포괄하는 ‘신제도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근원적인 처방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왜 그런가.
이를테면 문화ㆍ스포츠재단에 기업이 출연ㆍ지원한 행위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대가를 기대한 뇌물인지, 어쩔 수 없이 낸 준조세인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이행 차원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법제로만 재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관습ㆍ문화ㆍ규범과 떼어놓고 판단하기 어렵다. 경제학에선 뇌물의 요건으로 특정성(사익), 은밀성, 반대급부 등을 든다. 그러나 이들을 확대ㆍ연장하면 월드컵대회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기업의 협력ㆍ지원도 정경유착이요, 뇌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정부 뜻을 좇아 기업이 신규채용 인원을 늘리고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미소금융을 운영하며,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꾸려나가는 일은 또 어떤가. 기업이 전통시장 상품권과 여수엑스포 입장권을 다량 구매하는 결정은 과연 괜찮은가.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세’ 신설로 윽박지르자 미국 내 공장 신설을 서둘러 발표해 성의를 표시한 자동차 제조사들은 피해자인가, 암묵적 공모자인가.
설사 문제의 출연ㆍ지원이 뇌물로 판명된다고 해도 이는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연루된 구조적 부패에 가깝다. 정부 재량에 따를 수 있는 불이익을 회피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악습에 순응한 측면이 짙기 때문이다. 그 뿌리는 시장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영향력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압축 산업화를 이끈 발전ㆍ조장행정에 대한 향수와 기대로 인해 시장에 맡길 사안조차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상대비교성향과 동류의식이 강한데다 가부장문화까지 더해져 자기책임원칙이 미흡한 틈새를 정부ㆍ입법만능주의가 메꾸고 있다.
이에 따라 폭주하는 정책수요의 충족이 어려워지면서 그 부담을 정부가 기업에 전가하는 일이 잦다. 기업의 생애주기보다 자산규모에 따라 부과하는 선진국표준과 동떨어진 규제들도 이런 배경에서 태동되었다. 정치권도 민심에 편승해 약방 감초처럼 해결사를 자처하며 법제ㆍ기구ㆍ예산을 늘리면서, 시장에 불필요하게 개입하거나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예컨대 2014년 GDP 대비 중소기업금융에 대한 정부보증비율은 5.2%로 OECD 회원국 중 3위에 이른다. 2013년 농가소득 중 정부의 생산자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2%로 OECD 회원국 평균의 3배에 달한다. 개입의 정당성은 있지만 너무 많은 사안에 분산투자해 생색만 내는 찔끔 대책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요컨대 ‘최순실 사태’의 뿌리는 ‘큰 정부’이고, 또 그 토양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이 (자동차 소비자가격이 올라가더라도) 멕시코에 있는 자동차공장들이 미국으로 옮겨오기를 바라는 유권자 정서에 바탕을 둔 것과 같은 이치다. 민영화된 포스코나 KT의 최고경영자 임명에 정부가 간여하고, 면세점을 주기적으로 허가하는 한 기업들의 정부 눈치 보기는 사라지기 어렵다. 배임죄 요건이 느슨해서 기업인이 언제 무슨 구실로 수사를 받을지 전전긍긍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이 기업인을 독대하고, 해외순방에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낡은 관행 역시 없애야 한다.
부패는 공권력에서 파생되며, 특히 그 폐쇄성과 독점성에 기생한다. 따라서 정부 역할을 줄이고, 공직의 투명성과 경합성을 높이며, 시장친화기제를 확대하는 것이 반부패의 지름길이다. 민간 자율과 활력을 부추기는 것보다 ‘최순실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더 나은 대안은 없다.
박재완 (성균관대학교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jbahk@skku.ed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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