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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멕시코 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통령의 멕시코 방문을 계기로 지난 8년 간 중단됐던 한-멕시코 FTA 협상 재개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우리나라와 멕시코 정부는 2000년 5월 양국 간 투자보장협정 체결과 FTA 협상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후, 공동 연구 및 전문가그룹 회의 등을 거쳐 2007년 12월 멕시코시티에서 제 1차 한-멕시코 FTA 협상을 개최했으나 그 이듬해인 2008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제 2차 협상을 끝으로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2003년 12월 첫 협상을 시작해 2년 만에 타결됐던 멕시코와 일본 간 FTA가 2008년 4월 발효되면서 멕시코 산업계와 정부는 일본과 여러 면에서 유사한 한국과 추가적인 FTA를 체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멕시코 FTA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입장은 최근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지난해 10월 멕시코가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 타결되고, 우리나라 역시 TPP 가입에 부정적이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멕시코 측은 우리에게 굳이 양자간 FTA 협상을 재개하기보다 TPP 추가 가입을 권유하는 입장이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TPP 참여를 통해 한국과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 일본, 베트남 등 다른 회원국들까지 함께 아우르는 확대된 GVC(Global Value Chain) 형성이 한-멕시코 FTA보다 더 유리하다.

하지만 이미 협정문 타결과 서명을 마쳤다고 해도 TPP는 각 회원국들의 국내 검토 절차를 아직 남겨뒀다. 특히 미국 대선 후보들마다 공공연히 폐기, 혹은 재검토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 발효 시기나 전망이 불투명한 TPP 가입 시기를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더군다나, 한-멕시코 FTA 협상이 중단될 당시 멕시코 산업계가 요구했던 한국 자동차 및 관련 업계의 대 멕시코 직접투자도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자동차, 철강, 화학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신규 투자가 활발하고, 전자 · 전기, 에너지 등 기존 진출 업체들의 사업 확대도 크게 늘었다.

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 멕시코 직접투자는 2012년 51건(신고 기준), 5억2천만 달러(집행 기준) 수준에서 지난해 229건, 9억9천만 달러로 늘었고, 수출 역시 90억 달러에서 109억 달러로 20% 가량 증가했다. 이 기간 우리나라 해외투자 금액이 285억 달러에서 272억 달러로 줄었고 총수출 역시 3.8% 감소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예사롭지 않은 결과다. 이처럼 양국 간 경제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FTA 체결의 당위성 역시 함께 커지고 있다. 현지에 투자한 생산 법인들을 통해 멕시코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FTA를 통해 한국으로부터 자본재나 중간재를 수입할 때의 관세 부담을 덜어줄 이유는 충분하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직접투자 인센티브 조건을 두고 기아자동차와 누에보레온(Nuevo Leon) 주정부 사이에 빚어진 갈등은 FTA를 통한 투자자 보호 규정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과 멕시코가 NAFTA나 TPP 수준의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조항, 즉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를 포함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더라면 누에보레온 주정부가 투자 관련 제도 변경을 훨씬 더 신중하게 검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이번에 합의한대로 한-멕시코 FTA 협상을 재개하고 신속히 타결하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의 TPP 가입 시 멕시코가 중요한 우군이자 지원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양국 경제의 상생(win-win)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2014년까지도 지지부진하던 TPP 협상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신속한 타결과 서명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경제환경 변화로 무역 현장에 새로운 도전과 갈등 요인이 나타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양자간 FTA 중심으로 이뤄져 오던 세계경제 통합 움직임이 생산분업 확대와 GVC(Global Value Chain) 세분화 등으로 제 역할을 못하면서 TPP와 같은 다자간 Mega FTA 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미국, 일본 등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는 중국 제조업의 부상, 그리고 선진국과 후발국 간에 불공정하게 적용되는 경쟁환경 차이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TPP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TPP가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을 위해 운동장 높이를 고르게, 즉 경쟁 환경을 공정하게 만든다’는 구호가 등장한다.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정부 지원 등의 불공정한 행위를 통해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으며,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해 원칙을 지키면서 정당하게 일하는 노동자와 기업들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TPP가 이런 불공정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고, 관세 자유화 일정뿐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협정문에 포함시켰다. 이와 같은 탄생 배경을 고려할 때, TPP가 출범하면 우리 기업들의 사업 환경에도 몇 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무역블록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을 두고 선택의 고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러 Mega FTA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다양하고, TPP에 적합한 산업과 RCEP에 적합한 산업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FTA를 추진하는 목적이 역내 기업 및 관련 GVC의 국제 경쟁력 강화인 만큼 각국은 자신들의 경쟁 우위나 주력 산업 특성에 따라 관세 장벽 제거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비관세 장벽을 강조할 것인지, 혹은 전통 제조업과 미래형 제조업 중 어느 산업에 유리한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기업들의 중국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다양해졌고 TPP에 대한 중국의 입장도 아직 확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중국 활용 전략의 스펙트럼을 지금까지보다 더 넓혀야 할 필요성이 크다. 특히 전기차, 인공지능, 로봇 등 미래 혁신 산업 분야에서는 TPP 내 선진국들과 중국 간의 경쟁 및 합종연횡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에게도 한국경제 내부의 변화를 비롯해 탄력적이면서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TPP는 기존의 무역협정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해 다양한 부문에서 자유화를 강조하고 있다. 공정경쟁 환경 조성, 각종 규제 완화 및 철폐 등이 TPP 협정에 중요한 항목으로 추가된 것이 좋은 예다. 또, TPP는 여러 항목에서 ‘일반원칙 준수’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만큼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배타적으로 보호하거나 규제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들의 상당수가 효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자율과 책임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을 비롯한 여러 경제주체들이 일차적으로 한-멕시코 FTA 타결에 대비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애쓸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TPP 출범 이후의 여러 산업 환경 변화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hjkim@lgeri.com)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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