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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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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재협상 전망과 대응방안


2007년 협상 타결 이후 수년 동안의 진통 끝에 지난 2012년 발효되었던 한미 FTA의 재협상 가능성이 다시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자국 산업과 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왔다. 최근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가 체결된 이래 미국의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좋은 협정이 아니었다는 말과 함께 한국과 FTA를 재협상하고 있다고 발언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우리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에 미국과 합의한 적이 없다고 즉각 반박하였으나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발언이라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의 고위급 정부 인사들은 한미 FTA 재협상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여러 차례 한미 FTA에 대해서 “일자리를 파괴하는 협정(job killing deal)”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비난했다. 취임 이후에는 4월 한국을 방문한 펜스 부통령이 한미 FTA의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였고, 윌버 로스 상무장관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NAFTA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도 재검토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도 로이터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한미 FTA를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협정으로 규정하고 재협상 또는 종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의 고위 인사들의 한미 FTA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은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재협상 논의가 언제부터 시작될 것이며 어떤 분야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된 발언과 행동의 의미부터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음을 언급하며 대표적인 불공정 무역 분야로 자동차와 철강을 꼽았다.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는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133억 달러에서 발효 이후인 2015년 283억 달러로 증가하였고, 5년간 평균 무역수지 적자도 발효 이전 120억 달러에서 발효 이후 237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무역수지 적자만 따져보면 두 배 증가하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 확대의 원인을 한미 FTA에서 찾는 것은 적절치 못한 분석이다. 오히려 한미 FTA 발효 이후 양국 모두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교역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교역은 증가했으며 한미 모두 상대국 수입시장에서 점유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한미간 교역이 증가하고 상대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상승한 것은 한미 FTA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이는 한미 FTA가 상호 호혜적임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은 산업구조가 보완적이며 따라서 교역관계도 보완성이 크다. 특히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품목들은 대부분 미국의 대외경쟁력이 낮은 산업의 품목들이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대한국 30대 수입품목 중 26개 품목이 수입에 특화되어 있다. 따라서 FTA로 인한 한국의 대미 수출증대는 대부분이 무역전환효과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미국의 관련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를 보자. 한국의 대미 승용차 수출은 한미 FTA 발효 이후 연평균 12.4% 증가하였으나 현지생산 확대 등으로 2016년에는 오히려 감소했으며 자동차 부문 관세 양허는 2016부터 이루어져서 이전까지의 수출 증가도 FTA로 인한 관세 인하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한국 승용차 수출은 같은 기간 연평균 37.1%가 증가하여 한국 수입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자동차의 예를 보더라도 한미 FTA가 미국에 불공평한 협정(rough deal)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근거가 약한 주장을 하면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지하는 바와 같이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을 통한 제조업 일자리 회복이라는 공약으로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백인 근로계층의 지지에 힘입어 예상을 뒤엎고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자동차, 철강 등은 미국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양산업이다. 사양산업의 근로자들은 밀려들어오는 수입품으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제품들을 수출하는 국가와 기업에 대해 적대적이다. 따라서 한국, 일본, 중국 등 자동차, 제조업 강국들의 수출 공세의 위협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책무이자 정치적 부채이다. NAFTA를 제외하고 주요 교역국과 체결한 거의 유일한 자유무역협정인 한미 FTA의 당사국이자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연한 정치적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의 공세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미국이 한미 FTA에 대해 다시 논의하길 원한다면 미국의 무역대표부가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무역협정에 대한 권한을 가진 미 의회에서의 청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질적으로 재협상 논의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전략은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통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이런 문제들이 한미 FTA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재협상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무역수지 적자의 확대이다. 무역불균형 문제는 한미 FTA 이전부터 미국이 제기해왔다. 당시에는 한국의 무역장벽, 특히 미국보다 높은 수입관세, 그리고 비관세장벽을 그 원인으로 미국에서 지목했었다. 그러나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 수입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증가하였고 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 무역수지 적자 확대는 한국의 무역장벽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시장이 미국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하여 차별적이지 않음을 증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의 무역적자가 큰 산업이나 업종에 대해서는 대미국 직접투자와 연계하여 미국내 일자리 창출 효과 등으로 대응하는 논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의 대미 투자는 급격하게 증대하였다. 무역불균형 업종의 대미 직접투자 연계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관련 국내 기업들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관협력을 통해 한미 FTA 재협상 요구라는 파고를 넘는 지혜가 요구된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응전략을 통해 한미 FTA 재협상 단계까지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재협상은 추가적인 개방이나 자유화보다는 양국간의 이익의 균형이라는 명분으로 보호무역으로의 회귀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역사의 후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송원근(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 wsong@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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