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워런 버핏의 사업동반자인 찰리 멍거 버크셔 헤더웨이 부회장은 ‘지금 주식시장의 버블은 과거 닷컴버블 때 보다 더 심하다’라고 평가하여 미 주식시장은 한 때 출렁였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표적 정책처방은 유동성 공급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과잉 유동성의 대표적 부작용이 버블이다. 작년 코로나19 위기로 시장이 급락한 후 3월 중순부터 미국, 한국 등 주요국의 주가지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한국의 경우 2021년에 접어들면서 주가 상승세가 꺽여 하락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의 경우 2021년 12월 초 현재 아직도 변동성은 다소 강하지만 여전히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Nasdaq) 시장 상승세가 두드러지는데 나스닥지수는 2020년 3월 저점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상태이다. 멍거 부회장의 우려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일부 전문가 혹은 투자기관에서도 버블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거의 2년에 근접하는 기간 동안 기술주 중심의 주가상승은 과거 닷컴버블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자산가격의 버블과 그로 인한 시장폭락은 수백 년간 반복되어 온 현상이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시기마다 다르다. 최근 증시호황이 과거 닷컴버블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최근 나스닥 시장의 상승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소위 ‘빅테크’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애플 주가는 작년 3월 저점 대비 3배 이상 상승하였고 엔비디아는 6배 가까이 상승하였다. 그 외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IT대기업 모두 큰 폭의 주가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닷컴버블 시기, 뚜렷한 실적 없이 ‘꿈’ 만을 외치며 사라진 수많은 닷컴기업들과 비교하면 최근의 시장을 주도하는 테크기업들은 실적과 시장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력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주가가 폭락하더라도 시장에서 사라질 기업들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리먼브라더스처럼 시장에서 퇴출된 대기업이 있었고 다수의 금융대기업들이 구제금융에 의존해 생존하였다. 하지만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시장지배력이 높은 이들 기업의 주가가 폭락한다고 시장에서 사라질까. 물론 자산 대부분을 이들 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주가폭락 시 큰 손실을 입고 시장을 떠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버크셔 헤더웨이의 보유 주식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애플이다. 기술주 버블이 심각하다는 확신이 있으면 빨리 애플 주식비중을 줄이는 것이 상식적 투자전략이겠지만 버크셔 헤더웨이가 그런 포트폴리오 조정을 하였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닷컴버블 당시와 지금의 차이 중의 또 하나는 한국과 미국시장의 서로 다른 양상이다. 닷컴버블 당시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인터넷 시대의 큰 파도를 타고 신생 인터넷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버블이 터지면서 이들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넘치는 유동성의 효과를 한국은 1년도 채 누리지 못한 반면 미국시장은 몇 번의 조정을 거치면서도 상승하고 있다. 즉 과거와 달리 미국과 한국의 주식시장은 디커플링(decoupling)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시장은 버블일 수 있다. 그리고 당장 내일 주가가 폭락한다고 하여도 크게 이상할 것도 아니다. 주가폭락을 정당화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시장을 차별화하는 가장 요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기업의 보유 여부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변화는 더욱 빨라졌으며 그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기업들은 대부분 미국의 기업들이다. 보스톤 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Most Innovative Companies 2021’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50대 기업 중 27개사(전체의 54%)가 미국기업이었다. 그리고 1위~5위까지도 모두 미국의 빅테크기업이며 이들 5개 기업 모두 창립한 지 50년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리스트에 3개사가 포함되었는데 그 중 삼성이 6위로 가장 높은 순위였다.
닷컴버블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인터넷시대는 더욱 확장되었고 버블이 꺼지는 와중에서 살아남은 네이버 같은 인터넷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여 시장지배자가 되었다. 어쩌면 버블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 때 지불해야 하는 입장료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지금 미국 주식시장이 심각한 버블상태라고 한다면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본격적 진입을 위한 비용일 수도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은 버블의 수혜를 입은 빅테크기업들은 버블이 꺼진 후에도 여전히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모두 과거 요소투입형 성장에서 벗어나 혁신주도의 성장을 갈망한다. 하지만 혁신성장은 혁신기업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목표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경제 판도 변화도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혁신성장도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을 보유하느냐와 이들 기업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면서 혁신성장을 꾀하지만 동시에 혁신적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시장영향력이 커진 기업에 대해서는 규제도 강화한다. 문제는 그 규제들이 경쟁 활성화보다는 경제력집중억제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혁신적 대기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작은 규모의 국내 대기업에게 경제력집중억제를 명목으로 하는 규제가 부과되는 상황에서 경제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버블이라고 경고를 받는 미국 주식시장이 조용한 한국시장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고 건강해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태규(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