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성장의 양대 축으로 삼고 두 정책의 병행추진을 그동안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보다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대표정책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최저임금인상이 바로 떠오르지만 혁신성장의 대표정책에 대해서는 즉답이 쉽지 않다. 문제는 정부가 기대하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전혀 가시화되지 않고 논란만 가중된다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정책의 다른 한 축인 혁신성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정부도 소득주도성장에 매몰되지 않고 혁신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혁신성장의 상징적 카드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개혁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임시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 법안처리가 무산되었다. 관련 법안에 대해 여당에서조차 입장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외 규제프리존법, 서비스발전기본법 등 혁신성장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다른 제도개선 법안들도 지루한 협상 끝에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9월 정기국회가 막이 올랐지만 이번 회기에는 471조원 규모의 슈퍼예산 심의, 4.27판문점선언 국회비준 동의, 인사청문회 등 몇몇 휘발성이 큰 이슈가 기다리고 있어 혁신성장 관련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릴 수도 있다. 만약 각종 현안을 묶어 여야 간 팩키지 딜이 진행될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혁신성장 관련 법안들이 무더기로 이번에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
국회 밖의 상황도 우려스럽다. 몇몇 시민단체들은 혁신성장 관련 개혁 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뚜렷이 하고 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9월 초 ‘2018 정기국회 개혁 입법·정책과제’를 발표하면서 4개 반대과제를 제시하였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 반대, 「규제샌드박스 5법」제·개정 반대, 「규제프리존특별법」 제정 반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반대가 참여연대의 공식입장이다. 참여연대는 단순히 많은 시민단체 중의 하나가 아니다. 참여연대는 지금까지 다수의 국회의원과 장관들을 배출하였고 특히 현 정부에서는 행정부와 공공부문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참여연대 출신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시민단체의 입장이 100% 관철되지는 않아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애초 기대하였던 정책취지가 약화되는 수준으로 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개혁을 강조해왔다. 이 같은 대통령의 인식은 그동안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규제개혁이 시도되었지만 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웠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포지티브 규제체제의 틀 안에서만 규제개혁이 시도되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만약 시민단체의 이런 저런 요구가 대부분 반영된 규제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규제개혁의 효과도 저하될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혁신성장 입법들은 지난 정부에서도 논의되었던 과제들이 대부분이다. 현 집권 여당이 과거 야당일 때는 이들 입법과제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지만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현재의 위치에서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입장을 가져야 한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에 보다 적극적 입장을 취해야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 내 일부에서는 아직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논의과정에서 보였던 여당 내의 이견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약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이 같은 당내 이견이 발생하고 여기에 시민단체의 압력까지 더해질 경우 혁신성장을 위한 입법이 표류할 수 있다. 야당은 과감한 규제개혁을 요구하고 혁신성장을 추진해야 하는 여당은 수세적 입장을 취하는 어색한 광경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혁신성장 관련 법안들은 여당이 보다 과감한 내용을 담아 추진하여도 야당이 반대하지 않을 매우 드문 법안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입법 내용이 과감해질수록, 즉 네거티브 규제원칙에 충실할수록 야당보다는 오히려 여당 내 이견이나 국회 밖 시민단체의 압력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혁신성장을 위한 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무리 지으려면, 그리고 정책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입법을 하고자 한다면 여당은 어쩌면 외부협상보다는 내부협상에 보다 중점을 두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혁신성장의 성패는 집권 여당이 얼마나 산업혁신을 위한 규제개혁에 전향적 자세와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tk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