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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 - 또 다른 포퓰리즘의 길을 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2012년 12월 발효된 후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하는 사업조직이다. 상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기업과 다를 바 없다. 종전에는 특별법으로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 8개 분야에만 협동조합의 설립을 허용하였다. 기본법의 발효로 이제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5인 이상의 모든 제조업에서도 협동조합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여기저기 협동조합을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자금 500원으로 협동조합을 신청한 곳이 있는가 하면, 대리운전협동조합, 퀵서비스협동조합과 같이 협동조합이라기보다 협회 성격이 강한 협동조합도 수두룩하다. 2013년 8월말 2,400건이 협동조합 신청을 하였는데, 이 중 상당수가 전화연락조차 닿지 않는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먼저 궁금한 것은 일반 기업이 협동조합의 성격을 갖는 제조업체로 운영될 수 없을까 하는 점이다. 코우즈(R. H. Coase)는 그의 저서 ‘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에서 기업과 같은 조직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는 이 의문을 거래비용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기업을 통한 내적조정이 시장을 통한 외적 조정보다 거래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기업을 형성한다고 하였다. 협동조합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작은 생산업체들이 제각기 독립하여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이들이 수직적 또는 수평적으로 결합하여 공동 기자재 구매, 공동 마케팅, 특허 및 기술 공유 등을 하게 되면 경쟁력이 제고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것은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기업 형성의 이유와 동일하다. 기업 자체가 협동조합적인 성격을 갖는 조직체인 것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공동이익과 이윤획득을 목표로 한다. 공동체 가치와 사업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적 가치와 사업성공의 기치를 걸고 출발한 사회적기업의 경험을 떠올린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발효된 후, 정부는 2012년까지 사회적기업 육성을 위해 8천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였다. 사회적기업 육성이 입법되고 발효될 무렵 우리 사회는 사회적기업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듯이 떠들썩했다. 그러나 매년 이곳저곳에서 연구, 보고되는 사회적기업에 관한 평가보고서의 정책제언에는 언제나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이 없다면 적자를 면하기 어려우며, 자체적으로 경쟁력 확보를 해야 한다”는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기본법으로 입법된 협동조합법, 정치에 악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가 필요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후 사회적기업의 자리를 이제 협동조합이 슬며시 차지하고 있다. 포퓰리즘의 또 다른 진화인 것이다. 협동조합의 구호 역시 화려하다. 국가 대 시장을 극복할 수 있는 자본주의 4.0의 기업형태, 경쟁과 대립이 아닌 상생과 협력의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시켜주는 기업형태, 창조와 선도의 발전전략에 적합한 기업형태, 고용친화적인 기업형태, 한국형 복지국가의 달성을 가능케 하는 기업형태 등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달성해줄 수 있는 듯한 현혹적인 수식어가 협동조합 앞에 난무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란 사회적기업의 경험에서 본 바와 같이 결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의 승인요건인 1인1표제 의결권, 개인 출자한도액의 제한, 그리고 잉여금의 배당 방식에 있다.


1인1표제의 의결권은 신속하고 유연하며 책임지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며, 개인 출자에 한도를 두고 출자액에 그다지 따르지 않는 잉여금 배당은 기업규모의 확대를 어렵게 한다. 이러한 것들이 협동조합의 경쟁력 확보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져다주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대체로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린 후 문을 닫든지, 아니면 서류상으로만 협동조합의 구색을 갖추어 놓고 내부적으로는 일반 기업과 같이 운영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 어떤 사람은 창업을 하여 기업가로 살아가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그 기업의 종업원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더러는 그 기업가에게 자본이나 토지를 빌려주고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창업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개인회사나 주식회사 형태로, 또 다른 사람은 협동조합 형태로 창업할 수 있다. 자유 국가에서 누구도 이것이 저것보다, 또는 저것이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 강요할 수 없다. 일반 기업보다는 넉넉하지 않지만 공동체의 삶을 중요시 여기고 서로 보듬고 살아가고 싶다면 협동조합 형태로 기업을 운영하면 된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이 사회에 보다 적합한 기업 형태가 살아남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국가가 이런저런 지원책을 미끼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개입하여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이에 따른 자원을 낭비하는 데 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발효에 뒤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발표되고 난 뒤, 협동조합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대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협동조합이 자주·자립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법에는 직접적인 지원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법의 10조 2항에는 국가 및 공공단체는 일반 협동조합의 사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고, 그 사업에 필요한 자금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 조항이 다른 협동조합의 특별법과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농협이나, 신협 등 8개 협동조합은 국가의 목적에 따라 만든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국가지원의 명시는 나름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누구나 결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가 지원은 어떤 명분도 없으며 일반기업과의 명백한 차별이다.


더욱이 내년에 치르는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는 협동조합기본법이 현역 단체장에 의해 악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게 한다. 현역 단체장은 기본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지역 내 사업장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기존의 상법 속에서 다루어져야지 기본법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입법되지 말았어야 하지만, 일단 발효된 이상 이것이 정치인들이나 이들의 근처에서 맴도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가 요망된다.


배진영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 econbjy@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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