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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청사’의 숨겨진 문제점


며칠 전 한 유력 일간지가 “대통령이 질책하고… 국민이 분노해도 ‘한다면 하는’ 호화청사”라는 머리기사로 지방자치단체의 호화청사를 비난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대통령 지시도 안 통하는 ‘그들만의 왕국’이라고 꼬집었다.1) 이 신문이 보수신문이라고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대통령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지방자치단체를 나무라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지방자치는 ‘풀뿌리 표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방자치 단체가 호화청사를 짓든 아방궁을 짓든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 해당 자치 단체의 ‘주민’도 아닌 ‘국민’이 분노할 일은 더욱 아니다. 지자체의 청사 건설은 지자체와 해당 주민의 소관이지, 대통령이나 전체 국민의 소관이 아니다.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를 초등학생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또 지자체 청사에 대해 간섭을 했다. 2월 3일 녹색성장위원회를 주재하면서 ‘호화청사’가 ‘에너지 낭비 청사’라는 이유로 거듭 질타했다. 최근 100층짜리 청사를 건립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경기도 안양시는 청사 신축사업계획이 확정되면 최우선으로 에너지 부분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의 질책은 흥미롭다. 일반 시민들과 달리 ‘호화청사’라고 질책을 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기후변화 전략을 짜고 있는 와중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에너지를 최고로 낭비하는 빌딩을 지었다”고 질책했다. 이렇게 질책하면서도 “일부 지자체가 호화스러운 건물을 짓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토를 달았다.2) ‘호화스러운 청사’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좋은 건물은 에너지를 절감하는 건물”이라는 좋은 건물에 대한 대통령의 정의에 따라 건축 중이거나 설계 구상 중인 전국 18개 지방자치단체 청사들은 ‘좋은 건물’이 되기 위해 추가 예산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청사를 ‘호화청사’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호화로움’에 대한 절대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치스럽고 화려한 데가 있다”는 의미를 지닌 ‘호화롭다’는 상대적인 말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물건이면 호화로운 물건이고 분에 넘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경제 능력밖에 없는 사람이 외상으로 먹는 자장면은 호화로운 음식일 수 있다. 설사 지방자치단체의 청사가 호화롭게 보인다 할지라도 재정이 넉넉한 단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호화청사’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성남시 청사는 총사업비가 3,222억 원이 들어갔다. 성남시의 재정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이 청사가 ‘호화청사’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좋은 청사를 건설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이 좋은 청사를 갖고 있으면 편안하게 업무를 볼 수도 있고, 그 지역에 사는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지방자체단체가 여유가 있어 ‘호화청사’를 짓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100층 규모의 복합 건물로 시청사를 신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서 논란이 된 안양시의 이필운 시장은 “2017년까지 6만763㎡인 현 청사 부지를 복합개발해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가칭 Sky Tower)을 짓고 행정청사, 비즈니스센터, 컨벤션센터, 호텔, 시민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계획에 대해 ‘선거용’ 또는 ‘예산낭비’라는 비난에 대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현 청사를 저탄소 녹색 건물로 리모델링하려면 450억 원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민간자본을 유치해 청사를 새로 짓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건물이 완공되면 상시 근무자 외에도 5만여 명의 유동인구가 새로 생겨나 준공 첫해에는 1,900억 원, 이후에는 매년 370억 원의 재정 수입이 예상된다고 한다.3)

총 2조2,349억 원이 필요한 100층 청사를 위해 시는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자본으로 사업비를 충당할 예정이기 때문에 절대 ‘예산 낭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필운 안양 시장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안양시의 재정이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100층짜리 건물’의 신축은 ‘호화청사’가 아니라 연 370억 원의 세수를 안양시민에게 돌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심각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층짜리 건물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 건물에서 시청사는 연면적 8%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 건물을 시청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4)

뿐만 아니라 공유재산을 효율적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라는 정부의 방침에 가장 충실한 결정이며, 세수를 창출하는 효율적인 수익공간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항변했다. 손바닥만한 안양시를 살리기 위해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안양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재앙적 사업이라는 지적은 이런 기염 앞에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연 370억 원의 세수를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그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시장으로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호화청사’ 또는 ‘에너지 낭비 청사’라는 비판에 가려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은 지방재정의 악화이다. ‘4대강’, ‘세종시’가 정치적 쟁점에 휩싸여 그 사업들이 국가 재정에 얼마나 타격을 주고 있는가가 부각되고 있지 않듯이, ‘호화’와 ‘에너지’에 가려 지방재정 악화에 대한 지적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쟁점이 된 사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착한 정책’이라고 칭송해 정치적 쟁점의 반영에 오르지도 못한 ‘보금자리주택’과 ‘학자금대출’에도 수십조 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가 부채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2002년 133조 원이던 국가 채무가 2008년 말엔 308조 원으로 증가하였다.5)

중앙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은 중앙정부보다 더 열악하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국 광역자치단체 발행 지방채 채무액은 2010년에 8조9천억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2008년 2조310억 원에서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지방교부금은 줄어들고 지방세 징수액도 감소하여 재정은 더욱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 부채에 허덕이는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448조 원이던 가계부채가 2009년 6월말에는 698조 원으로 폭증했다.6)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정부가 커지면 국가 부채는 늘어나고 경제성장은 침체된다. 한 번 커진 정부가 축소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도 사실상 가계부채에서 시작되었고, 국가 부채로 증폭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의 지방채는 제2 금융위기의 불씨로 우려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빚을 내어 거대 사업을 벌임으로써 부채를 더 키우는 꼴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과 주민에 대해 부채 의식이 없다. 1824년 토머스 제퍼슨의 말처럼 “우리는 정부기구를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근면한 사람들의 노동 위에서 살아가는 기생충들도 너무 많이 기르고 있다.”7) 더 늦기 전에 정부든 개인이든 자기 책임의 원칙과 경제적 자립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재정건전성은 가계든, 지자체든, 국가든 할 것 없이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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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0년 2월 3일자 1면

2) 조선일보, “李대통령 일부 지자체 호화빌딩, 시대 인식 부족”, 2010년 2월 4일자 1ㆍ8면

3) 조선일보,『안양시 100층 청사 추진 논란』, 2010년 1월 29일자 2면

4) 중부일보,『이필운 안양시장 ‘100층 호화청사’ 논란 반박』, 2010년 2월 2일자

5) Views&News,『이한구, 盧 비난했더니 MB정권 더 엉망』, 2009년 10월 22일과 조선일보, 2009년 6월 16일

자, B3면

6) 김동욱,『최근 외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위기 극복 사례』,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지방재정과 지방세 통권 제

20호, 2009. 8, p.73 참조

7) 데이비드 보아즈, 『자유주의로의 초대』, 강위석 외 옮김, 북코리아, 2009,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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